[광화문에서/장환수]WBC 중계의 두 얼굴

  • 입력 2009년 3월 9일 02시 57분


스포츠에도 두 개의 얼굴이 있다.

나중에 대부분 텅 비어 있을 걸 뻔히 알면서도 수조 원을 들여 월드컵 축구 경기장 10개를 새로 지은 것은 공익적인 면이 강조된 것이다. 관심은 덜하지만 장애인과 아마추어 선수를 한 번씩 집중 조명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반면 날마다 프로 선수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상업적인 이유에서다.

야구 국가 대항전인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국내 중계권 재판매를 놓고 IB스포츠와 지상파 방송 3사가 대회 개막 직전까지 갈등을 빚은 것은 스포츠의 공익성과 상업성이 충돌한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서 공익성은 국민의 볼 권리다. 상업성은 중계를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중계권료 지출을 능가하는가를 따지는 것이다.

스포츠 마케팅 회사인 IB스포츠는 방송 3사를 제치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부터 WBC 국내 독점 중계권을 확보했다. 2004년부터 4년간 4800만 달러에 메이저리그 경기의 국내 중계권을 따냈고 올해 7년간 7000만 달러에 재계약한 IB스포츠가 WBC 중계권 협상에서도 우선권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IB스포츠가 이를 방송사에 재판매하는 과정에서 여러 돌출 변수가 발생했다.

경제난으로 인한 환율 폭등과 광고시장 위축은 방송사에 큰 부담이 됐다. 2006년 1회 대회 때에 비해 달라진 경기 방식도 문제다. 두 번 이기면 올라가고, 두 번 지면 탈락하는 더블 일리미네이션 제도가 채택됐다. 이에 따라 한국의 경기 일정은 첫 경기인 6일 대만전을 빼고는 승패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방송사는 저녁 황금 시간대에 인기 드라마나 오락 프로를 언제 빼야 되는지 알 수 없는 등 방송 편성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메이저리그와 WBC 중계권을 패키지로 판매하는 것도 지상파 방송사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다. 박찬호가 부진하고 김병현이 소속 팀조차 없이 방황하고 있는 메이저리그는 최근 들어 시청률이 소수점 아래까지 곤두박질쳤다. 지상파로선 도저히 방송을 내보낼 수 없는 수치다.

그러나 WBC는 다르다. 6일 대만전은 전국 시청률 12.3%를 기록했다. 7일 일본전은 주말이었고 참패를 당했지만 15.3%나 됐다. 같은 시간대에 방영된 최고 인기 프로그램 무한도전(16.7%)에 거의 육박했다.

결국 WBC는 국민적 관심사란 것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대비를 해야 한다.

마침 방송통신위원회도 2013년 3회 대회 때부터는 올림픽, 월드컵처럼 WBC를 ‘보편적 시청권’에 포함시킬 것이라고 한다. 올해처럼 WBC가 생중계되지 못할 위기에 처했을 때 방통위가 나서 중재가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국내 방송 환경을 무시한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패키지 판매에도 대처해야 한다. 연간 1000만 달러의 중계권료를 내는 한국은 메이저리그의 큰 시장 중 하나다. 혼자 힘으로 어렵다면 일본 대만 등 아시아 3개국이 힘을 합칠 수도 있을 것이다.

IB스포츠는 이번에 큰 손해를 감수했다. 300만 달러에 팔려고 했던 지상파 중계권을 130만 달러 선에 넘겼다. 결과적으로 미국 글로벌 스포츠 자본의 주머니만 채워줬다. 방통위의 중재에 앞서 방송사 간, 또는 방송사와 스포츠 마케팅 업체 간의 과도한 경쟁을 막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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