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정찬주]상생은 자연의 섭리다

  • 입력 2009년 2월 28일 03시 03분


내 산중처소를 찾는 손님의 직업은 다양하다. 절골 마을의 황 씨, 화가, 교수, 시인, 스님, 떡 방앗간 주인 등 여러 직종의 사람이 온다. 최근에는 내가 사는 전남 화순군의 공무원 두 분이 내 산방(山房)에 들러 얘기하고 갔다. 나는 누구에게나 차를 대접한다. 차 마시는 태도를 보면 대충 사람의 인품을 짐작할 수 있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은 맑고 향기로운 차의 성품을 닮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손님에게는 반가운 마음이 들어 차를 서너 잔 이상 권한다. 군청 공무원 두 분도 겸손하게 차를 여러 잔 마셨다.

지방공무원의 고뇌를 헤아려볼 수 있는 자리였다. 그분을 통해서 군청이 필요한 서류나 발급하는 장소가 아니라 군민의 소득 향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음을 알았다. 모후산에 고려인삼 시원지(始原地)를 복원하고 친환경 생태관광테마파크를 개발하는 일도 그 일환임을 이해했다. 그분은 내게 농산물이 소비자에게 바로 가게끔 유통회사를 설립하거나, 젊은 귀농인을 위한 한옥마을을 조성하거나 하여 살맛나는 농촌을 위해 헌신하는 군수의 뜻을 선의를 가지고 실천하는데도 일부 군민과의 갈등이 깊다고 하소연했다. 그래서 나는 사실이 군민에게 잘못 알려져 열정적으로 일하는 공무원의 상처가 얼마나 큰지 공감했다.

‘독균과 공생’ 연구하는 의학자

나는 솔직히 언제 투표했는지도 잊어버렸지만 군민 사이에 퍼진 불신의 뿌리가 지난 선거에 기인함을 알고 몹시 놀랐다. 내가 사는 화순군만의 일도 아니었다. 국민을 상대로 정치하는 중앙 무대의 지도자도 마찬가지였다. 선거는 오래 전에 끝났지만 긴장구도는 여전하고 백안시하는 관계가 황당하게 지속되는 것이다. 선거를 축제로 바꿀 수는 없는지 제도 자체에 회의가 들기도 한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을 언제까지 부러운 눈으로 쳐다봐야 할지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그런데 나는 그 공무원에게 쓴소리를 좀 했다.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므로 빛이 있기만을 바라지 말라고 했다. 동조하는 사람만 가려 보지 말고 부담스럽더라도 반대자를 인정하라고 충고했다. 내 산방에서 만나 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 전남대 의대를 정년퇴직한 미생물학자 정선식 명예교수의 말을 빌렸다.

의학자는 병균을 죽이는 항생제를 한때는 전지전능한 마법의 탄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일부 균은 항생제의 강력한 공격에도 살아남았고 내성이 키워진 균의 독성은 치명적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 박사는 프랑스에서 귀국한 이후부터 25년째 균을 죽이기보다는 균을 달래서 독성을 순화하며 공생하는 쪽으로 연구를 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해로운 균이나 이로운 균이나 생명의 가치는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도 한다.

나는 그 공무원이 간 뒤, 내 얘기도 할 걸 하고 아쉬워했다. 미생물만 얘기하다가 정작 지난해 여름 지네에게 시달린 내 경험을 들려주지 못했다. 집 밖에서 가끔 보았던 지네가 어느새 문틈으로 들어와 밤이 되면 나를 물기도 했었다. 그렇다고 지네를 볼 때마다 살충제 같은 약을 뿌려 살생하는 일도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지네도 살고 나도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냈다. 내 이웃인 쌍봉다원의 고 선생이 자신의 경험이라며 “지네를 죽이면 더 많은 지네가 나타난다”고 충고한 적도 있으므로 야행성의 지네를 집게로 집어서 마당에 놓아주는 방식으로 타협했다. 지네가 동면에 든 겨울이 되어 효과를 검증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밤중에도 두 다리를 쭉 편 채 잠을 잔다. 나를 오싹하게 했던 지네지만 내 집 마당에서 나와 공생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진 덕분이다.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기거늘

현재까지 우리 입속에서 발견된 미생물은 750여 종이라고 한다. 경이롭게도 입속의 미생물은 자기 자리에서 옆 공간을 탐하지 않고 조화롭게 산다고 한다.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작은 미생물도 상생(相生)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간은 왜 그러지 못한지 불가사의하기만 하다. 오늘도 전투를 치르듯 임전무퇴의 모습을 보여주는 여의도 국회의원들을 보면 더욱 안타깝고 답답하다. 노자의 스승 상용(商容)이 자신의 빠진 이와 혀를 보이며 노자에게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

정찬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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