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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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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인 드라마 작가인 모니카 메이서 씨가 들려준 ‘프리즌 브레이크’ 제작의 뒷얘기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았다. 메이서 씨는 ‘프리즌 브레이크’ ‘로스트’ ‘24’ 등 인기 ‘미드(미국 드라마)’에서 여러 편의 에피소드를 썼다.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최근 한국 드라마 제작사가 기획 중인 드라마에 참여하기 위해 처음 모국을 찾았다.
▶본보 4일자 A29면에 관련기사
그의 말에 따르면 ‘프리즌 브레이크’를 공동 집필하는 작가 7명은 종일 회의를 ‘치른다’. 탈옥 아이디어를 각각 낸 뒤 서로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이 과정에서 작가들은 자기 아이디어가 더 현실적이라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 합의가 되지 않으면 투표로 아이디어를 선택한다.
에피소드 하나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주일. 1주일간의 공동 회의와 2, 3일간 아웃라인 작업, 이후 집필에 들어간다. 메이서 씨는 “이처럼 치열한 경쟁을 통해 걸러진 스토리만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메이서 씨는 첫 미드 진출작인 ‘24’에서 보조 작가였다. 그가 맡은 건 일종의 조사 업무. 드라마의 설정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개연성이 있는지를 따지는 일이었다.
예를 들어 로스앤젤레스 상공에서 핵폭탄이 투하되는 장면을 찍는다고 하자. 메이서 씨는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날 경우 어떤 상황이 생기고 몇 명이 죽는지를 현실감 있게 묘사하기 위해 핵 물리학자들을 심층 취재했다. 그뿐만 아니다. 드라마 배경으로 잠깐 흐르는 라디오의 대본이나 주인공이 잠깐 끼적이는 일기장을 쓰기도 했다. 세세한 부분도 최대한 현실에 가깝게 제작해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그가 전하는 ‘미드 스토리’의 힘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쪽 대본’에 허덕이며 제작하는 한국 드라마의 현실이 떠올랐다. 한국 드라마의 제작 현실이 열악하긴 하지만 언제까지 개연성 없고 비현실적인 스토리로 시청자를 붙잡을 수 있을 것인지. 한국 드라마가 한류를 계속 부채질하려면 ‘미드’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
염희진 문화부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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