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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7월 25일 19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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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인 28일자 신문은 ‘통일 못 이룬 적막감뿐’ 제하의 기사를 통해 임시수도 부산의 허탈한 분위기를 전했다. ‘벽보 앞에 운집한 시민들은 휴전 조인 보도에 비상한 관심의 눈초리를 집중한 가운데 미국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되고야 말았다는 허전한 마음을(중략)’이라는 내용도 그 일부다.
북진통일을 주장했던 이승만 대통령도 29일자에 실린 ‘기어코 통일성취, 북한동포여 실망 말라’는 성명으로 통일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는 ‘정전(停戰)이라는 것이 결코 싸움을 적게 하는 것이 아니라(중략) 전쟁과 파괴적 행동으로 공산 측이 더욱 전진하여 오게 되는 서곡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에 정전 조인을 반대했다’고 휴전 후 전개될 한반도 상황을 꿰뚫어 봤다.
그러나 전(全) 전선에서 전투가 중지되고 비무장지대 철수가 시작됐으며 군사분계선이 확정됐다. 30일자 스케치 기사는 눈물겹다. ‘처절! 단장(斷腸)의 능선, 뿌려진 피의 대가도 헛되이…, 쓰러진 전우 안고 아군 눈물의 철수’라는 제목이 말해 주듯 피의 능선을 공산군 측에 넘겨주고 떠나야 하는 장병들의 애끓는 심정을 담았다.
이렇게 성립된 휴전은 반세기 이상 지속돼 오늘에 이르렀다. 그동안 국지적(局地的)인 군사 충돌은 수없이 많았지만 분단의 큰 틀은 유지됐다. 그러다 보니 전후(戰後) 세대들은 마치 ‘평화의 나라’에서 사는 듯한 착각에 빠져 살아왔다. 정부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문제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지만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온다면 오죽 좋을까만, 과연 가까운 장래에 그것이 가능할까. 평화협정의 성급한 ‘선언’만으로 평화는 오지 않을 것이다. 1967년 이수근 위장귀순사건, 1968년의 울진-삼척 공비(共匪)사건과 미국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청와대 기습사건, 1976년의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등은 옛이야기라 치자. 2002년 서해교전과 지난해의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최근 시험 발사한 신형 단거리 미사일의 개발, 상습적인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및 재획정 주장 등은 북이 적화 야욕을 버리지 않았음을 웅변한다.
전면전 상황이 아니라고 해서 평화는 아니다. 2·13 베이징 합의에 따라 북이 핵시설 폐쇄 등을 시작했다지만 북은 믿을 수 없는 집단이다.
휴전협정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백선엽(87) 예비역 대장에게 휴전 54주년의 의미를 물었다. 6·25는 아직도 휴전 중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노(老)장군은 충고했다. “54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군을 몰아내고 적화통일을 달성하려는 북의 전략은 전혀 변함이 없다. 민족이니 통일이니 하는 달콤한 말에 절대로 속아선 안 된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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