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전율,추리소설 20선]<6>훈민정음 암살사건

  • 입력 2007년 7월 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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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작가들의 상상력에 날개를 다는 원동력이다. 많은 작가가 한 줄 역사에 의지해 무궁무진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켰다. 사실을 뜻하는 팩트(fact)와 허구를 뜻하는 픽션(fiction)의 조합어인 팩션(faction)은 방대한 역사적 지식에 상상력을 보탠 소설을 말한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만든 것이 아니다’라는 가설에서 시작한 ‘훈민정음 암살사건’도 그런 이유로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한국형 팩션 추리소설 중 하나다.

못 다한 아버지의 꿈을 간직한 역사학자 서민영 교수와 우연한 사건으로 의식불명이 된 동료의 원수를 찾아 나선 형사 강현석. 이들은 크고 작은 여러 사건에 휘말리면서 ‘한글의 기원’을 재평가할 수 있을 만한 ‘훈민정음 원류본’을 찾아 나선다.

작가는 주인공 서 교수를 통해 한글은 고조선에서 쓰인 가림토 문자에서 시작되었으며 가림토 문자 전승론이 맞는다면 한글은 4000년이 넘는 문자이며 세계적으로 재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훈민정음 원류본이 진짜 있었고 그 진품이 발견된다면 우리나라의 문자 역사는 다시 쓰여야 해요. 고작 1443년에 만들어져 갓 560여 년을 넘긴 글자가 아니라, 단군시대에 만들어져 4000여 년을 넘긴 문자라는 게 밝혀지면 우리나라 한글의 유구한 역사성은 세계에서 다시 한 번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어요. 문자의 역사는 바로 그 문자의 값어치를 나타냅니다.”

이러한 역사적 의문을 바탕으로 한 소설 속에는 독자의 관심을 끌 만한 흥미로운 장치가 가득하다. 소매치기에 의해 발견된 세종대왕의 친필문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고문서 감정가 등이 그것. 역사학자의 유서를 가득 채우고 있는 비밀 암호가 등장하는 부분에선 잠시 책장을 덮고 암호 해독의 방법을 고민해 보게 된다. 숫자나 기호가 아닌 우리말로 된 암호는 낯설고도 신선하다. 지금까지의 추적을 한 번에 뒤엎는 끝 부분의 반전 또한 묘미이다. 책을 읽다 보면 문득 ‘다빈치 코드’가 오버랩된다. 그러나 이 책 속에는 그동안 가까이 두고도 잘 알지 못했던 우리의 문화재들과 한글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이 녹아 있다. 그 점이 이 책을 좀 더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여름이다. 1년 동안 선보이는 추리소설과 공포소설의 3분의 1 이상은 이 계절에 출간된다. 한 편의 추리소설은 콜라 한 잔보다 더 짜릿한 청량감을 준다. 귀신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살인사건의 배후와 역사의 비밀을 교차해 풀어 나가는 ‘훈민정음 암살사건’의 이야기 전개는 등골이 오싹해지면서도 흥미진진하다. 서늘한 공포를 느끼기 위해 공포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을 찾지 않아도 추리소설 한 권을 통해 충분히 시원해질 수 있을 것이다.

김경수 온오프라인서점 ‘리브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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