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논리적 오류-그 악성 바이러스

  • 입력 2005년 1월 19일 12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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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출근 날 서울에서 지하철 내 방화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은 다행히 인명피해가 없었지만 2년 전의 대구지하철 방화사건과 매우 유사했다. 사건 발생이후 여론은 지하철당국에 대한 비난일색이었다. 대구사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시의 문제점들이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지하철 객차 내부가 불연제로 바꾸어지지도 않았고 기관사에게 객차 내의 상황을 알릴 통신체계도 마련되지 않았다는 등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당연한 지적과 비난이었다.

그런데 지하철공사나 도시철도공사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비난이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것 일수도 있다.(물론 직원들의 대응미숙과 훈련부족은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지하철은 서울에서만 연간 5000억원 이상의 적자를 내고 있고 현재의 누적 부채도 5조원이 넘는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독립채산제라는 이유로 예산지원을 해주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수천억원에 달하는 시설개선 비용을 마련하려면 지하철 요금을 올리는 길 밖에 없지만 그동안 요금인상은 말만 꺼내도 비난이 쏟아지는 상황이었다는 것. 서울지하철의 한 관계자는 이를 두고 손발을 묶어놓고 헤엄을 치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항변했다.

빵 한개에 단무지 2,3점, 게맛살 4조각, 삶은 메추리알 5개, 튀김 2개. 이번에 문제가 됐던 서귀포시의 결식아동 도시락의 내용물이다. 이 도시락은 지나치게 부실해 일반인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문제의 도시락을 만든 시청 구내식당측은 용기비용과 인건비 배달비 등을 제외한 원가가 1400원에 불과했다고 해명했지만 짐작컨대 그 정도의 내용물이라면 1400원어치도 되지 않을 듯 했다. 이 경우는 변명의 여지없이 업자의 양심에 다소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결식아동 점심용으로 책정된 2500원으로 도시락을 만들어 제공할 식당이 없다는 점이다. 서귀포의 경우도 식당을 구하지 못해 시청 구내식당에 의뢰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이번에 서귀포와 군산에서 불량도시락 사건이 발생한 후 강릉지역에서 결식아동에게 도시락 공급을 해 오던 민간업자가 공급포기 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그는 “자원봉사를 하는 심정으로 해왔는데 많은 영리를 취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 매우 부담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결식아동용 도시락을 만드는 일부 업자들이 보다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내용물을 줄었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 문제의 본질은 일부 업자의 양심불량 여부가 아니라 정부가 한 끼분 도시락 비용을 적정하게 책정했느냐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결식아동을 위해 더 많은 예산을 지출할 생각이 없고 국민들도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세금을 더 낼 의사가 없다면 급식책임을 맡고 있는 지방자체단체만 비난하는 것은 불합리한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일부대학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대학 등록금도 마찬가지다.해마다 신학기 때만 되면 다수의 대학에서 등록금 투쟁이 벌어진다. 대학 측은 적정수준의 교직원 보수인상과 시설 투자를 위해 등록금을 올려야겠다고 주장하고 학생회 측은 인상반대 투쟁을 벌인다. 이 경우 정부라도 대학 재정의 부족분을 지원해준다면 문제는 해결되겠지만 정부 지원은 늘 소요액에 크게 모자란다.

그래서 등록금도 올리지 않고 정부의 지원도 없는 상태에서 대학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남은 대안은 일부 사학에서 주장하고 있듯이 기여입학제 정도일 듯하다. 학교 재정에 크게 기여하는 인물의 자녀를 정원외 일정 비율로 뽑도록 제도화해 그 돈으로 학교 구성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역시 위화감 조성과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학생 전교조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교육부가 결사반대하고 있다. 도무지 앞뒤가 안 맞는 경우들이지만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늘상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최근 출판된 인하대 철학과 김영진교수의 저서 ‘철학적 병에 대한 진단과 처방’(철학과 현실사)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김교수는 이 책에서 한국사회가 윤리적 착각과 논리적 오류라는 악성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는 곳곳에서 논리적 오류가 넘쳐난다”며 서로 자신들이 (논리적으로)무슨 잘못을 저지르는지조차 모르고 떠들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위에서 예시한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만연하는 앞뒤가 안맞는 주장과 어떤 사안에 대한 비이성적 대응 역시 한국인의 논리적 오류를 실증하는 케이스가 아닐까. 김교수는 한국에서 철학과 논리학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정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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