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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5월 23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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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없애고자 하는 대상이 존재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증거들을 발굴해 제시해야 한다. 이른바 강력한 동인(motive) 이슈들을 끊임없이 계발해야 한다. 사회에 조금도 이롭지 않은 것이면 당연히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약간의 순기능이라도 있다면 옹호론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폐지하려는 대상이 정의사회 구현에 장애물(obstacle)이라는 증거도 함께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좀 허물은 있더라도 장애물까지는 아니라든지, 다른 장애물도 많은데 왜 하필 그 대상이냐는 논리도 꺾기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앞서 보여준 심각한 문제들이 폐지 후 말끔히 해결되었음을 나타내는 치유(cure)의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 폐지 후에 문제가 개선되기는커녕 다시 반복될 여지가 있다면 논쟁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폐지에 드는 비용(cost)이 납득할 수준이어야 한다. 쓰레기도 소각하는 데 시간과 장소와 돈이 필요하다. 하물며 오랜 기간 자본과 논리가 축적된 무엇인가를 없애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폐지에 들어가는 비용과 노력이 너무 커서 차라리 그냥 같이 사는 편이 낫다면 논쟁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논쟁이란 본디 변화를 바라는 쪽에서 제의하는 것이다. 현상유지론자들은 수성(守成)만 하면 되므로 종종 게으르고 방만하다. 따라서 논쟁을 걸고, 논쟁을 이끌며, 이기기 위한 증거를 수집해야 하는 것은 폐지론자들의 몫이다. 부지런해야 하고, 논리 정연해야 하며, 끈기와 근성이 있어야 한다. 한번 생긴 것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으려는 관성의 법칙과도 싸워야 한다. 그런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뭔가를 없애는 데 쓴다니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박성희 객원논설위원·이화여대 교수 shpark1@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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