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활/‘김진표 경제팀’에게

  • 입력 2003년 3월 2일 1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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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첫 경제팀 인선과 관련해 “노 대통령을 다시 봤다”라는 사람이 적지 않다. 사회문화 부처의 ‘파격’과 달리 경제부처는 안정감과 현실성을 중시한 점이 눈에 띈다. 정책방향에 대한 불안감이 컸던 경제계의 반응도 일단 긍정적이다.

김진표 경제부총리는 예상보다 빠르긴 하지만 조정능력과 균형감각을 갖춰 ‘경제팀 수장(首長)’감으로 꼽혀 왔다.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 최종찬 건설교통부 장관,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도 손색이 별로 없다. 청와대에서 정책조율을 할 이정우 대통령 정책실장과 권오규 정책수석비서관, 조윤제 경제보좌관도 무난하고 합리적이라는 평이다.

하지만 개인적 평가와 별개로 ‘김진표 경제팀’ 앞에 놓인 한국경제의 현주소는 밝지 않다. 냉정히 말해 지금 그들이 출항(出航)한 바다는 폭풍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곳곳에 암초가 기다리고 있다. 자칫 방향을 잘못 잡으면 배가 뒤집어질 수도 있다.

국제유가 급등과 세계경제 침체, 북한 핵위기 등 대외 악재는 ‘소규모 개방경제체제’인 한국에 큰 부담이다. 대내적으로는 내수와 투자심리 급랭, 물가상승, 국제수지 악화가 겹쳐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어두운 경제지표와 통계에 안 잡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를 뒷받침한다.

재정·통화정책 수단도 그리 마땅치 않다. 최근 몇 년간 가속화한 재정악화는 돈을 풀어 경기침체에 대응하는 정책 선택을 어렵게 한다. 실질금리 마이너스시대에 추가금리인하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새 경제팀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기업하려는 의욕’을 북돋아야 한다. 경영자들로부터 왜 “한국 땅에서는 기업 못하겠다”는 말이 나오는지 현실을 정확히 읽고 해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기업과 기업인의 일부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 것은 좋다. 하지만 지나치게 도덕적, 이념적 접근을 서두르거나 반(反)기업 정서를 부추기면 환자를 살리기는커녕 바로 영안실로 보낼 수도 있다.

부유층과 중산층을 다독거리고 불안감을 줄여주려는 노력도 시급하다. ‘가진 계층’이 예뻐서가 아니다. 경제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성 때문이다. ‘돈이 빠져나간다’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거나 이기심을 탓하는 것은 문제를 풀기보다 더 꼬이게 만든다.

어떤 정책도 재원의 한계와 중장기적 영향을 감안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당장은 달콤해 보이지만 치명적 독이 묻은 선심성 인기정책에 매달릴 때 미래는 암울하다.

‘사회적 약자’를 정말 생각한다면 시장경제의 바탕 위에 일자리가 늘어나도록 신경 써야 한다. 땀흘리지 않고 공짜 돈에 의존하게 하는 방식을 택해 성공한 나라는 없다. 복지혜택은 한번 확대되면 정치적 이해 때문에라도 다시 줄이기 어렵다.

목소리는 크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은 안 지는 일부 사회단체나 이해집단의 입김에 휘둘리는 것도 위험하다. 김대중 정부에서 권력이 정권편향적 ‘박수부대’와 손잡고 밀어붙인 이른바 ‘의료개혁’과 ‘언론개혁’이 어떤 후유증을 불러왔는가.

마키아벨리는 ‘정략론’에서 시대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제도개혁의 필요성이 클수록 ‘돌팔이 의사’가 아니라 ‘유능한 의사’가 요구된다고 충고했다. 국정(國政) 운영에서 프로가 갖춰야 할 실력과 정교함을 무시하는 아마추어적 행태, 세상을 보는 눈이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매도하는 일방적 독선논리로 공동체의 안전과 행복은 어렵다.

김진표 경제팀에 부탁한다. 철저히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원칙에 충실하라. 경제활동이 물 흐르듯이 이뤄지도록 길을 잡고 ‘이념과 당위(當爲)의 과잉’을 경계하라. 당신들이 돌팔이 의사로 끝나면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재앙이다.

권순활 경제부 차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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