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 조승미 교수 "춤열정 앞에선 암도 두손 들었죠"

  • 입력 2000년 11월 6일 18시 46분


지난 2월부터 폐암으로 투병 중인 한양대 조승미교수(53·조승미발레단 단장).

지난 주 서울 옥수동의 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삼손은 머리카락이 없으면 힘이 없는 데…”라며 웃었다. 항암 치료로 빠진 머리를 가리기 위해 털실로 짠 모자를 눌러 썼지만 건강해 보였다.

그는 지난달 ‘암세포가 보이지 않는다’는 판정과 ‘그래도 안정’이라는 충고를 받았지만 조승미발레단 창설 20주년 기념 공연 ‘삼손과 데릴라’를 위해 연습실을 찾았다.

10세 때 처음 토 슈즈를 신었다. 그 뒤 43년, 짧지 않은 세월을 발레 속에서 살았다.

오랜 습관일까. 아무리 몸이 아파도 보통 신발과 코트 차림으로는 무대를 밟을 수 없다.

“누구 토 슈즈 좀 빌려줄래.”

수석안무가인 조교수는 제자의 토 슈즈를 빌려 신고 코트를 벗고서 연습실 무대에 올랐다. 그는 이번 공연의 안무의 일부를 직접 맡았다. 물론 수석무용수이자 상임안무가인 김길용이 상당 부분을 맡고 있긴 하지만.

“이번이 ‘삼손과 데릴라’의 23번째 무대입니다. 92년 초연 뒤 정말로 애정을 쏟았고 20주년 공연의 주인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여기 (박)미정이가 현실의 데릴라, 진희는 회상의 데릴랍니다.”

세계 최초의 청각장애 프리마 발레리나인 강진희 등 50여명의 무용수가 무대에 올라 2막8장의 ‘삼손과 데릴라’를 춤으로 표현하게 된다.

“암선고를 받은 뒤 1년 5년 10년, 그렇게 숫자를 헤아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내게 남아 있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가족 춤 발레단이었습니다. 이들을 생각하자 살겠다는 의지도 더 커졌습니다.”

그는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현미밥 채식 등을 위주로 천연식 치료와 몸을 추스릴 수 있을 때 꾸준하게 걸은 게 효과를 본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 48㎏대였던 체중은 요즘 53∼54㎏를 오르내린다.

그는 암 발병 사실을 알고 엉엉 울던, 제자이자 딸처럼 지내온 탤런트 도지원과 7일 KBS 2TV ‘행복채널’(오전9시반)에 출연해 투병과 공연준비 등에 관해 얘기한다.

공연은 10일 7시반, 11일 3시 7시반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1만∼5만원. 02―2292―7385

[조승미교수의 투병일지]

#암인가?(2.7)

의사도 ‘아빠(김의영·55)’도 눈치가 이상하다. 못 참고 “저 암인가요”라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폐에 종양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아빠는 “조그만 거래”라고 했다. 발레리나와 교수로, 엄마와 아내로 너무 행복했는데…. 아, 세상은 정말 공평하구나.

#첫 항암치료(2.19∼25)

다른 환자들이 항암제를 ‘원자폭탄’이라고 하더니. 손의 혈관이 약해 목의 혈관을 통해 주사를 맞았다. 토하고 또 토하고, 위도 장도 꼬였다. 모든 냄새가 싫다.

#머리카락이 빠졌다(3.30)

두 번째 치료를 받고도 머리카락이 멀쩡했다. 나는 특별히 안 빠지나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아침 손으로 머리를 만지자 한웅큼 두웅큼 그대로 머리카락이 빠졌다. 가위를 들고 화장실로 쫓아갔다. 듬성듬성 까까머리가 됐다. 거울을 보다 울다 웃었다. ‘나 정말 암에 걸렸구나.’

#3개월뒤 X선검사와 다시 항암치료(5.20)

검사 결과가 나왔다. 일단 암세포 확산이 정지됐단다. 의사는 조리를 잘했다며 칭찬까지 했다. 항암제를 다시 맞자 2,3㎝ 정도 나왔던 머리카락이 사라졌다.

#사라졌습니다(10.3)

암세포가 ‘없어요’ ‘안 보이네요’라고 했다. 그렇지만 싸움이 언제 다시 시작될지 모른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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