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土曜쟁점토론]예금부분보장제 내년 실시

  • 입력 2000년 10월 6일 18시 37분


금융기관이 파산했을 때 예금의 일부만 국가가 보장해주는 예금부분보장제도의 내년 1월 실시 방침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이 제도를 시행하지 않으면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현상을 조장하고 정책신뢰도와 대외신인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며 제도를 보완하더라도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금융구조조정이 미진하고 금융시장 시스템이 취약한 상태에서 시행하면 자금의 대이동으로 금융시장에 일대 혼란이 빚어질 수 있다며 시행시기를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찬성/또 연기땐 정책신뢰도 추락

현재 시행되고 있는 예금전액보호제도는 97년 말 발생한 금융시장의 불안을 진정시킬 목적으로 도입됐으나 이 제도에 수반하는 부작용이 아주 많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즉 부실금융기관은 예금자에게 높은 금리를 주고 예금자는 이를 선호하는 도덕적 해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도덕적 해이 현상은 예금전액보호제도 아래에서 가장 극대화되며 금융기관이 파산했을 때 보험금 지급이 확대되고 그로 인한 국민 부담도 확대될 수 있다. 또 규제와 감독만으로 도덕적 해이를 시정하려는 노력은 완전하지 못한데다 비용도 많이 들어 예금부분보호제도를 실시해 시장 규율을 확립해야 한다.

현재 예금부분보호제도 실시에 대한 장애요소로 지적되고 있는 자금시장의 불안은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자금시장의 불안은 모든 기업에 대해 자금 공급이 중단되는 신용경색과는 달리 금융기관들이 자체적인 신용평가에 따라 자금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전적으로 예금부분보호제도 실시를 앞두고 나타나는 문제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나라는 과거 금융위기를 겪은 스웨덴이나 핀란드와는 달리 예금전액보호제도의 폐지 조건 대신 폐지 시점을 지정했다. 이는 정책의 신뢰도를 극대화하고 예금부분보호제도에 부합하는 법과 제도의 정비 및 구조개혁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였으며 상당한 진전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또 예금전액보호제도를 시행하는 과정에서도 98년 7월 2000만원 이상의 예금에 대해서는 원금만을 보호하기로 하는 것 등의 제도변화를 통해 예금부분보호제도의 시행을 충분히 홍보해 왔다. 예금자들 또한 이에 대한 대비를 해온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시점에서 시행을 연기할 경우 국민은 정부의 개혁의지가 부족한 것으로 판단할 것이며 정부의 신뢰도와 국제신인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예금부분보호제도는 연기되기보다는 예금자들을 이해시키고 안심시킬 수 있는 보완책 마련을 통해 내년 1월부터 예정대로 실시돼야 한다고 판단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계획대로 올해 안에 은행, 금고 등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완료하고 예금보호한도를 상향조정하는 등의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현행 제도에서도 95% 정도의 예금자가 보호를 받고 있으므로 예금부분보호제도의 영향은 사실상 금융기관에 대한 정보가 밝은 나머지 5%의 고액 예금자에 국한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예금부분보호제도는 전 국민의 이해가 직결돼 있는 의약분업 논의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사소한 소문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금융산업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예금부분보호제도와 관련된 논의는 정확한 사실 판단과 예측에 기초를 두어야 할 것이다. 예금자에게 막연한 불안심리를 조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재연(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반대/금융환경 취약 큰 혼란 초래

얼마 전 어떤 모임에서 한 참석자가 “도대체 남의 예금을 2000만원까지만 보장한다니 이게 무슨 이야기입니까”라며 항의조의 질문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것을 보면서 예금부분보장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예금부분보장제도는 금융기관의 재무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그리고 시장원리에 따른 자기책임 원칙을 확립한다는 견지에서 언젠가 실시돼야 될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의 준비상태나 실시환경 및 시기 등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우리와 여건이 비슷한 일본의 경우를 통해 내년부터 이 제도를 실시해도 좋을지 따져 보기로 한다.

일본은 파산 금융기관을 대신해 예금보호기구가 1000만엔까지를 한도로 예금을 보장하는 ‘페이오프제도’(부분보장제도)를 1995년 실시하려다가 금융불안을 우려해 2001년 4월 이후로 연기했다. 그러나 일본은 올 2월 금융기관의 경영환경과 준비미비를 이유로 다시 정기예금은 1년(2002년 4월), 결제성예금은 2년(2003년 4월) 더 연기했다. 그러면서도 향후 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

첫째, 이미 마련된 70조엔의 공적자금 한도를 감액조정하지 않고 예금부분보장제도 실시에 대비한 ‘위기관리계정’을 신설해 15조엔을 다른 계정에서 전입해 대비하고 있다. 우리는 제도 실시에 대비해 막대한 공적자금을 할당할 수 있는가?

둘째, 예금자의 자기책임 원칙의 대전제는 선택해야 할 금융기관과 금융상품에 대한 공정하고 상세한 공시체제가 갖춰져야 한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당국으로부터 업무 개선을 촉구하는 ‘조기시정조치’ 명령을 받은 금융기관은 이 사실과 내용을 공개하도록 돼 있다.

셋째, 20조엔의 예금을 갖고 있는 도쿄(東京) 등 10개 지방자치단체는 예금부분보장제도 실시에 대비해 금융기관이나 투자대상의 선택방법 및 정보교환 등 자구책을 공동 연구하고 있다. 우리는 거액 예금자가 필요한 정보를 알고 있고 이에 대한 준비가 돼 있는가?

넷째, 자금의 대이동은 큰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일본도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금리와 세제 등에 있어서 우대받던 우편저금제도를 시정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우량은행과 우체국에 자금이 몰리는 현상이 예금부분보장제도 실시로 가속화하면 신용경색을 자초하는 꼴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일본 은행들은 제도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현재의 예금자를 우대하고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파산할 경우 예금자는 같은 은행에서 받은 대출을 자신의 예금에서 우선적으로 상계할 수 있도록 하는 약관을 마련하는 등 금융기관으로서의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새로운 제도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동의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예금부분보장제도는 그 준비상황을 고려해볼 때 실시 시기를 연기해야 한다.

홍인기(인하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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