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수산/日대중문화 무엇이 우리와 다른가?

  • 입력 1998년 10월 22일 19시 14분


일본의 대중문화를 말할 때, 우리에게는 이제까지 저질 폭력 선정이라는 ‘한결같은 관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만이 아닌 모든 대중문화의 속성일 뿐이다. 소량의 문화가 소수의 향수자를 위해 발신되고, 또한 수신된 문화가 단순히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재생되는 고급문화와는 다르다.

그렇게 볼 때 일본 대중문화는 그것을 만들어내는 토양에서부터 정서에까지 우리와 다른 많은 부분을 가지고 있다. 몇년간의 일본생활을 통해서 몸에 느껴지던 일본 대중문화의 본질에는 쉽게 떠오르는 몇가지의 키워드가 있었다.

▼팔릴 상품 만드는 산업▼

◇에로티시즘◇

일본의 어느 언론은 여성을 파는 모든 산업, 섹스 비디오에서부터 매음까지를 ‘욕망산업’이라고 이름한 적이 있다. 공식적으로 일본에서 공창이 없어진 것이 도쿄올림픽(1964) 4년 전이었다고 한다. 메이지시대 이전까지 혼욕은 일반적인 목욕탕의 모습이었다. 목욕탕에서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등을 밀어주기도 했다. 우리 문화에서 이것은 야만이다. 일본 문화가 선정적인 것이 아니다. 성(性)을 보는 두 나라의 시각이 이토록 서로 다르다.

◇센티멘털리즘◇

눈물도 상술이라는 듯 일본의 대중문화는 센티멘털리즘으로 도금되어 있다. 감상주의란 일반적인 인간의 정서를 왜곡 과장하여 그 슬픔을 극단적으로 목적화시키는 행위다. 사실성이나 극의 진실과는 상관없이 슬픔을 강요하는 표현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만화의 천국◇

주간 만화잡지 ‘소년 점프’는 95년에 일본 만화잡지 사상 최고 부수인 6백53만부를 한 호에 기록했다. 같은 만화잡지 ‘소년 매거진’이 4백15만부였다. 소년만화의 연간 발행부수는 93년이 최고로, 15억9천4백97만부였다. 이 가공할 부수가 만들어내는 ‘좋은 만화’가 또 그만큼이나 많다는 것을 외면한 채, 우리는 지금 일본만화를 폭력 선정이라고만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목숨을 건다◇

우리는 대중문화를 좀 ‘뭘로’ 안다. 그래서 ‘딴따라’라고까지 비하한다. 이 점이 우리와 다르다. 목숨을 걸고 한다는, ‘잇쇼켄메이(一生懸命)’라는 정신은 대중문화를 일궈가는 사람들에게도 골격이 되어 있다. 우수한 인력들이 포진해 있다는 의미도 된다.

◇스타에게 요구되는 전인격◇

신문 연재만화가가 죽자 국화로 장식된 스튜디오에서 2시간짜리 추모방송이 나가고, 원로 연극배우의 장례식이 TV로 생중계된다. 일본 대중문화는 그 영웅에 대한 사회적 위치 혹은 자리매김이 우리와 다르다. 전폭적인 존경과 사랑을 그 스타에게 바치는 대신 대중은 그에게 전인격적인 사생활과 도덕적 전범(典範)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엔카 가수 미소라 히바리가 죽자 전국에 분향소가 설치되는 패닉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씨, 고맙습니다.’ 대중문화의 스타가 세상을 떠나면 특별 추모방송에서는 그렇게 커다란 자막을 내보내며 그의 명복을 빈다. 우리는 무엇이라고 쓰는가. 쓰기는커녕 대중문화 스타의 추모 방송을 본 기억이 연예뉴스 외에 나에게는 없다.

◇기괴(奇怪)성◇

어느 나라든 대중문화는 그 사회의 범죄와 많이 닮아 있다. 일본 대중문화에서 한국인이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그 ‘그로테스크’함이 아닐까. 이 점은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그들만의 범죄에서도 잘 나타난다. 주택가를 돌아다니면서 여자의 팬티와 브래지어만 훔쳐서 그것으로 커튼도 만들고 식탁보도 만들고 탁자덮개도 만들어놓고 사는 남자를 우리 사회에서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일본에는 이런 범죄가 흔하디 흔하다. 일본처럼 가학성 또는 피학성 포르노 테이프가 많은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이러한 속성의 일본대중문화에 이제 우리는 ‘교류’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벌써 무분별 수입 조짐▼

대중문화란 일종의 소비재인데 그것을 왜 이렇게 나라경제가 어려운 때에 들여와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장롱 속의 금반지까지 꺼내 모으던 때가 언젠데…하는 아쉬움도 있다. 개방에 대해 실로 ‘개방된 논의와 국민적 합의’가 먼저 있고 개방이 결정되어야지, 결정해 놓고 국민을 설득하려 하는가 하는 뒤바뀐 순서에 대한 어이없음도 있다.

그러나 이것만은 잊지 말아야 한다. 대중문화는 산업이다. 문화라는 말로 호도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벌써 일본에 건넬 로열티를 다른 나라보다 10배까지 뛰어오르게 과당경쟁을 벌이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한수산(작가·세종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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