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종완/「괌」사고의 교훈

  • 입력 1997년 8월 11일 21시 05분


최근 국내에서 상영된 영화 「VOLCANO」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어느날 화산 폭발의 대재앙이 발생하는 것을 가상의 현실로 그리고 있다. 용암이 로스앤젤레스 번화가를 내습하고 화산재가 도심 하늘을 뒤덮는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로스앤젤레스 비상대책센터의 구난 책임자인 주연배우 토미 리 존스는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그는 필요하다면 지하철의 운행도 중단시킬 수 있다. 지난 6일 괌 아가냐공항 인근에 2백54명을 태운 대한항공기가 추락하자 즉각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가 나서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모습은 영화속의 장면을 연상시켜 준다. 미 연방정부 직원이나 괌 주둔 미군 관계자도 NTSB의 동의없이는 사고현장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다. 체계적인 구난과 사고원인 조사를 위해 현장을 철저히 통제하는 NTSB의 조치에 대해 현지로 달려간 유족들은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동서양의 문화 차이에서 비롯된 일이기도 하지만 조직적이고 효율적인 구난활동을 펴기 위해 모든 사항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피한 조치다. ▼ 체계적인 美 구난조치 ▼ 통곡의 니미츠힐 구난현장 모습은 지난 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 서울시 경찰 소방서측이 우왕좌왕하며 중구난방으로 대처해 사고 발생 초기 신속한 구조는커녕 혼란만 가중시킨 것과 너무 대조적이다. 비단 삼풍 참사 때만이 아니다. 金泳三(김영삼)정부가 들어선 이후 육 해 공에서 발생한 △구포열차 탈선(93년3월) △아시아나기 추락(93년7월) △서해훼리호 침몰(93년10월) △성수대교 붕괴(94년10월) △대구지하철 공사장 폭발(95년4월) 등 대형 재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대형사고가 날 때마다 온통 난리를 피우며 재발 방지대책을 세우지만 여론이 가라앉고 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흐지부지되기 일쑤다. 이제 더이상 「냄비 체질」의 재난 방지대책은 안된다. 지난 78년 옛 소련 땅 무르만스크에 대한항공기가 불시착한 사건을 계기로 거론되기 시작한 대형사고조사 전담기구 설치의 「20년 숙원」을 해결해야 한다. 이 기구가 진작 설치돼 국외에서 발생한 이번 국적기 추락사고 현장에 전문요원을 급파, 국제민간항공협약에 따라 미국측의 구난 및 사고조사활동에 신속히 동참했다면 희생자 유족들의 분노가 조금은 덜했을지 모른다. ▼ 최고책임자 처벌 엄하게 ▼ 대형 사고가 일어났을 때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대책 못지 않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원인의 분명한 규명이다. 재발 방지를 위한 교훈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89년 미국 알래스카 해역에서 발생한 엑슨 발데즈호 기름유출사고와 관련, 1년간의 조사끝에 유조선내 기름탱크를 칸막이 방으로 만드는 대책을 내놓은 것이 좋은 예다. 귀중한 생명을 천재지변이 아닌 인재(人災)로 잃었을 때 안전관계자의 책임 소재를 따져 법적 책임을 지우는 것도 필요하다. 문제는 주로 실무자만이 책임을 지는 데 있다. 사람을 형사처벌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만 이같은 처벌 관행이 계속된다면 유사 사고의 재발을 막는 일은 요원할지 모른다. 이에 대해 한 재난전문가는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한국은 법적으로 안전실무자의 의무만 있고 권한은 없다. 따라서 안전실무자가 어떤 건의를 해도 최고책임자가 수용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대형사고 발생시 최고책임자에게 연대 책임을 묻도록 규정하면 안전의 절반은 이미 확보된 것이나 다름없다』 김종완 (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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