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서로 어울리지 않을 때 「갓 쓰고 자전거 탄다」거나 「양복에 고무신」이라는 말을 쓴다. 개화기 서양문물이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실제 있었던 광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견 이보다 더 조화가 안될 듯한 풍경이 어제 서울 충정로 동아일보 18층 강당에서 벌어졌다. 60세이상 노인 50명이 한국PC통신 하이텔 원로방과 본사가 공동 주최한 제1회 「고령자 PC통신 백일장 경진대회」에 참가, 컴퓨터 기량을 뽐낸 것이다.
▼응시자 중에는 경기도 부천에서 올라온 朴潤相(박윤상·80)옹이 있었다. 모시 저고리와 한복 바지 차림으로 단말기 앞에 앉아 손자에게 E메일(전자우편)을 띄웠다. 과외에 시달리는 14세짜리 중학생 손자에게 「안타깝다」는 위로의 말과 함께 정의와 사랑으로 앞날을 개척하라고 격려했다. 경기 안산의 李正順(이정순·77)할머니, 경남 진주의 鄭泰容(정태용·70)할아버지도 1년여동안 배운 솜씨로 또박또박 자판을 두드렸다.
▼하이텔측에 따르면 이날 참가자들은 전국 17개 원로방 회원 약 1만명중에서 뽑혀온 「선수」들. 회원중에는 90세가 넘는 고령자도 더러 있다는 것이다. 백일장에 참관자로 온 노인만도 2백여명에 이르러 이들의 컴퓨터에 대한 높은 관심을 말해 주었다. 일부 노인들은 컴퓨터로 개인정보까지 관리하는 등 젊은이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노인들에게도 적지 않은 고민이 있는 모양이다. 우선 컴퓨터를 갖고 싶은데 구입할 돈이 없고, 손자들 것을 이용한다 해도 시간당 1천원 정도 드는 전화요금 때문에 며느리 눈치를 살피게 된다는 것이다. 백일장의 한 관계자는 컴퓨터를 이용하는 노인에게는 군경 유가족처럼 전화료를 할인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