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축구인 조광래는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12월 11일 05시 30분


대구FC 조광래 사장. 동아일보DB
대구FC 조광래 사장. 동아일보DB
프로축구 K리그1 14라운드를 마친 5월의 어느 날, 대구FC 안드레(46) 감독은 조광래(64) 사장의 사무실을 찾았다. 당시 대구의 성적은 1승4무9패로 꼴찌였다. 처음 감독 타이틀을 단 안드레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의 시행착오를 겪고 있었다. 사장을 찾아간 건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풍부한 지도자 경험을 가진 사장이라면 위기극복의 방법도 알고 있으리라 믿었다.

사장은 사장대로 입장이 달랐다. 지난 2년 동안 1부 승격 및 잔류라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는 동안 이래저래 벤치에 도움을 준 건 사실이지만, 올 시즌은 감독에게 모든 걸 맡기고 뒤에서 지원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벤치에 간섭한다는 소리를 들을까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요청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팀 성적이 바닥을 헤매는데다 이대로라면 2부 강등은 불을 보듯 뻔했다. 특히 많은 돈을 들인 새 홈 경기장(가칭 포레스트 아레나)에서 내년 시즌 1부가 아닌, 2부 경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다. 실망한 팬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다행히 14라운드 이후가 월드컵 휴식기여서 시간이 조금 있었다. 감독과 사장은 머리를 맞댔다. 어쩌면 이건 대구만의 소통 방식일지 모른다. 팀에 맞는 전술을 구상해 새로운 훈련 프로그램을 짰다. 전력 분석도 강화했다. 특히 상대의 장단점을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아울러 러시아월드컵 벨기에대표팀의 공격전술을 응용했다. 스리백 수비전술에도 변화를 줬다. 또 부진의 원인인 외국인 선수들의 교체도 이뤄졌다.

후반기 대구의 반전을 예상한 전문가는 드물었다. 하지만 모두가 똘똘 뭉친 대구는 반전에 성공했다.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며 일찌감치 1부 잔류를 확정했고, 14승(8무16패)을 올리며 하위 스플릿에서 가장 높은 순위인 7위를 마크했다.

이 기세는 FA컵까지 이어졌다. 대구는 결승에서 울산 현대를 상대로 1, 2차전 합계 5-1(2승)로 이기고 창단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대구는 최근 2년간 울산을 상대로 단 한번도 이기지 못했을 정도로 철저하게 열세였지만 FA컵 결승에서 보기 좋게 뒤집었다. 이는 절실함의 승리였다. 조 사장은 “FA컵은 우리에게 절실했다. 그래서 경기를 앞두고 많은 분석을 했다. 우리가 패한 경기는 물론이고 울산이 상대팀에 진 경기도 철저히 파헤쳤다”며 우승 원동력을 소개했다.

대구FC 조광래 사장. 스포츠동아DB
대구FC 조광래 사장. 스포츠동아DB

대구는 이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를 바라보고 있다. 조 사장은 “리그와 ACL을 병행하기 위해서는 선수 확보가 필요하다. 부자구단처럼 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능력 안에서 가능한 선수를 영입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조 사장은 어린 선수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올 시즌 팀의 주축이 된 정승원, 김대원 등이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이번 겨울에도 몇몇 유망주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조 사장은 귀띔했다.

선수시절 국가대표팀에서 ‘컴퓨터 링커’로 불릴 정도로 정확한 패스로 이름을 날렸고, 클럽 감독과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지낸 조 사장은 대구를 번듯한 구단으로 키워내며 행정가로서도 성공적인 길을 걷고 있다. 축구인 조광래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대구에 와서 세웠던 목표, 그러니까 승격과 잔류, ACL 출전 등이 이뤄졌다. 이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라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왔다. 이제 다음 단계는 K리그 정상이다. 시민구단으로서 벅차다는 걸 알지만 그래서 더욱 더 매력이 있다.”

스스로 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든 걸 바쳐온 조 사장. 이제 더 높고 큰 꿈을 위해 다시 뛰기 시작한 그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체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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