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획]은하수 찾아 나섰다가… 10년째 사막에 뿌리내린 여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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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바하리야 사막 여행가이드 이경미 씨

‘버섯과 닭’을 닮은 기암괴석. 수십만∼수백만 년 동안 모래바람에 깎여 탄생한 자연의 신비다. 백사막에는 낙타 토끼 등의 형상을 한 기암괴석으로 가득하다(위). 10년을 사막에서 살아온 이경미 씨가 11일 백사막에서 활짝 웃고 있다. 바하리야=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버섯과 닭’을 닮은 기암괴석. 수십만∼수백만 년 동안 모래바람에 깎여 탄생한 자연의 신비다. 백사막에는 낙타 토끼 등의 형상을 한 기암괴석으로 가득하다(위). 10년을 사막에서 살아온 이경미 씨가 11일 백사막에서 활짝 웃고 있다. 바하리야=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서남쪽으로 400km가량 떨어진 바하리야 사막마을은 서부 사막 투어의 관문으로 통한다. 이 마을의 유일한 한국인 주민인 이경미 씨(46·여)를 만나기 위해 11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복잡한 카이로 시내 도로를 빠져나오니 사막을 배경으로 쭉 뻗은 왕복 2차로 도로가 끝없이 이어졌다. 좁은 길을 오가는 건 화물 트럭 몇 대가 전부였다. 풍경이 너무 단조로워 이따금 나타나는 송신탑이 반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휴대전화 3G 통신망도 먹통이 됐다.

 5시간을 달리니 벽돌과 흙으로 지은 집들이 듬성듬성 들어선 바하리야 마을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씨가 사는 집은 연보라색 문이 인상적인 2층 벽돌집이었다. 기자를 반갑게 맞이한 그는 10년 전 사막 마을에 신접살림을 꾸리면서 전 재산을 털어 지은 집이라고 했다. 집 안을 둘러보는데 살이 통통하게 오른 도마뱀이 벽을 타고 노닐고 있었다. 새끼 때부터 보아왔던 건데 파리 같은 벌레를 잡아먹어 줘서 내쫓지 않고 일부러 키우고 있는 거라고 했다. 사막 인생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벽돌집에서 이 씨는 지난 10년의 삶을 풀어놓았다.

차량 전복 사고로 만난 열 살 연하 남편

 공무원이던 이 씨는 2003년 가을 휴가를 얻어 친구와 함께 이집트 카이로를 방문했다. 은하수 서린 밤하늘에 별이 쏟아지는 장관이 멋지다기에 버스를 타고 바하리야 사막을 찾아갔다. 마을 버스정류장에 동양인들이 내리자 가이드들이 사막 투어를 시켜 주겠다며 몰려들었다.

 이 씨 일행은 다른 여행객 2명과 합승해 사막 투어를 떠났다. 바하리야 사막은 원래 바다였지만 지각 변동으로 지표면이 솟아올라 육지가 된 곳이다. ‘바하’는 아랍어로 바다를 뜻한다. 수백만 년 동안 풍화 작용을 거친 석회암 지대는 기암괴석이 가득한 백사막으로 변했고,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굳어 흑사막이 생겨났다. 석영이 가득한 크리스털 사막도 자랑거리다. 사막 간 거리가 차편으로 2, 3시간씩 떨어져 있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해가 지기 전에 모두 둘러볼 수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가이드의 마음이 급해서였을까. 이 씨 일행을 태운 4륜 구동 차량은 해질 무렵 사막 한가운데를 달리다가 전복됐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 채 눈을 떠 보니 바닥에 널브러진 운전사와 한국인 동행 3명은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 당시 서른셋 처녀였던 이 씨는 어둠에 깔리던 사막 한복판의 뒤집힌 차 안에서 길지 않은 삶의 끝을 생각했다.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 씨는 “겨우 정신을 차려 보니 머리에선 피가 흐르는데 보이는 건 모래뿐이고 들리는 건 바람 소리가 전부였다”며 “그때는 ‘여기서 이대로 죽는 건가’ 했다”고 사고 순간을 떠올렸다.

 일행 중 제일 먼저 깨어난 이 씨는 뒤집힌 차량에서 기름이 새어 나오는 걸 보고 차량이 폭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래를 헤치고 차량을 빠져나와 일행을 꼬집고 때리며 깨웠다. 급한 마음에 10m 넘게 뛰쳐나왔는데 다행히 폭발은 없었다. 이 씨는 일행 모두 크게 다치진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목을 조르는 듯했던 긴장감에서 해방됐다.

 사고를 낸 가이드가 마을에 있는 동료에게 전화로 구조를 요청했다. 두세 시간 떨어진 마을에서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사막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봤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이라는 관용적 표현으로 설명하기엔 차고 넘칠 정도로 사막 하늘에 서린 은하수는 절경(絶景)이었다. 기자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던 이 씨는 “머리를 타고 얼굴로 피가 흘러내리는 걸 잊을 만큼 아름다웠다”며 웃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깜깜한 사막을 관통하는 빛 한 줄기가 이 씨 일행을 비췄다. 마을에서 먼 길을 뚫고 구조 차량이 도착한 것이다. 당시 스물세 살 청년이자 지금의 남편인 하마다 씨(36)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사막여우와 은하수가 일상인 ‘사막 새댁’

 “e메일 주소 좀 알려주세요.” 하마다 씨는 다음 날 카이로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려던 이 씨에게 용기를 내 말했다. 처음 만난 지 24시간이 채 안 됐지만 사막에서 나고 자란 순수 청년은 이미 사랑에 빠져 있었다. 열 살 어린 이집트 청년이 남자로 보이지 않았던 이 씨는 자신의 e메일 주소 대신 친구의 e메일 주소를 알려줬다. 그렇게 이 씨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모든 게 일상으로 돌아오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마다 씨에게 알려준 e메일 주소를 사용하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얘, 그 이집트 남자가 매일 e메일 보내면서 지극정성인데 너도 읽어 보고 웬만하면 답장 한번 해줘라.” e메일은 어설픈 영어로 ‘그대와 함께 백마를 타고 사막을 달리고 싶어요’ 같은 ‘유치한’ 구애로 가득했다. 하지만 진정성은 있어 보였다. 이 씨가 카이로로 떠난 날부터 매일 한 통씩 꼬박 e메일을 보낸 사실을 알게 되자 조금씩 마음이 흔들렸다.

 e메일이 오갈수록 둘은 점점 가까워졌다. 수화기 너머 이틀에 한 번 통화하는 사이로 발전하면서 이 씨는 2004년 다시 카이로행 비행기를 탔다. 첫 여행 때 다치는 바람에 제대로 사막 관광을 하지 못했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 하마다 씨가 눈에 아른거렸다. 이 씨는 2005년에도 이집트를 찾았고, 연애 3년 만인 2006년 하마다 씨에게 전화로 청혼을 받았다.

 “전화를 받고 깜짝 놀라 일주일 동안 고민했는데, 결국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뭐…’ 싶더라고요.” 이 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이집트 사막으로 시집간다니 대구 본가에선 극구 반대했다. 헤어질 사람은 헤어지고 만날 사람은 만난다고 했던가. 이 씨는 하마다 씨의 순정 하나만 믿고 이집트 남자의 신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사막에서의 신접살림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둘이 살 2층집을 짓느라 돈을 모두 쏟아부어 수중에 달랑 100이집트파운드(약 1만2700원)만 있던 적도 있었다. 사막은 물건이나 음식을 모두 도시에서 가져와야 해 물가가 15∼20% 더 비싸다. 상수도가 없어 지하수를 퍼서 물탱크에 저장해 두고 아껴 쓰고, 좋아하던 영화를 보려면 5시간 차를 타고 카이로로 나가야 했다. 바람이 몰아치는 날엔 전화나 인터넷이 끊기기 일쑤였다. 전력이 부족해 자주 정전됐다.

 남편과 매일같이 찾는 사막이 모든 근심을 잊게 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사막에 바큇자국을 내며 달리면 마음이 뻥 뚫렸다. 사막 한가운데에 천막을 치고 불을 피워 고기를 구우면 냄새를 맡은 사막여우들이 옹기종기 몰려들었다. 밥을 지어 먹고 매트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면 크고 작은 별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렇게 사막에 빠져 일주일 동안 집에 돌아가지 않기도 했다.

 사막에 야영 갔다가 모래폭풍에 갇혀 고생한 적도 있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자 차 안으로 들어가 밤을 꼬박 새우면서도 남편은 1시간마다 밖으로 나가 타이어에 물을 부었다. 모래가 쌓여 바퀴가 묻히는 걸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날이 밝자 모래가 무릎 높이까지 쌓였지만 차바퀴만큼은 온전했다. 사막에서 나고 자란 남편의 지혜였다.

 이 씨는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남편을 도와 사막 가이드 일을 시작했다. 남편이 마을 버스터미널에서 관광객을 기다리다가 만난 한국 여성에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면서부터였다. 남편은 “우리 집에 한국인이 있다”며 그 여성에게 전화로 이 씨를 연결해 줬고, 교사였던 그 여성은 이 씨에게 “가이드를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김밥 두 줄 달랑 싸들고 시작한 사막 가이드 생활은 그 교사가 귀국해 인터넷에 사막 여행기와 이 씨 전화번호를 올리면서 한국에 알려지게 됐다.

이경미 씨가 10년 전 카이로에서 400km 떨어진 바하리야 마을로 이사 오면서 지었다는 2층집. 연보라색 대문이 인상적인 이 집은 한국 관광객의 명소이자 현지인의 사랑방이 됐다.
이경미 씨가 10년 전 카이로에서 400km 떨어진 바하리야 마을로 이사 오면서 지었다는 2층집. 연보라색 대문이 인상적인 이 집은 한국 관광객의 명소이자 현지인의 사랑방이 됐다.
 보라색 대문이 돋보이는 이 씨의 2층집은 입소문을 타고 사막과 별을 보려는 한국인들의 명소로 꽤 유명해졌다. 매일 관광객 10∼20명이 몰려들어 많을 때는 하루에 100만 원을 벌었다. 예능인 노홍철 씨는 지난해 방송을 쉬면서 유럽 여행 중 이 씨 집에 혼자 와 3일 동안 먹고 자며 사막여행을 했다. 이 씨는 “노 씨가 마을 결혼식장에 이집트 전통 의상을 입고 나타나 신나게 춤추면서 웃음바다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개그맨 류담 씨는 무명 시절 혼자 사막에 놀러와 이 씨 집에 묵던 여행객들의 배꼽을 잡게 했다. 당시 무명 개그맨이던 그는 사람들에게 “어떡하면 뜰 수 있을까 고민하러 사막에 혼자 왔다”고 했다. 사막에서 고민한 덕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류 씨는 한국으로 돌아간 직후 유명 지상파 드라마에 캐스팅돼 소위 ‘빵’ 떴다.

“끝까지 버티는 게 이기는 거다”

 쨍하고 해뜰 날만 계속될 것 같던 사막 생활에 위기가 찾아온 건 2011년이었다. 그해 1월부터 이집트를 강타한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로 호스니 무바라크 독재 정권이 무너진 뒤 치안이 불안해지자 한국인 관광객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들어선 무함마드 무르시 정부가 1년 만인 2013년 군부 쿠데타로 축출되면서 관광 여건은 악화됐다. 사막마을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은 2014년 2월 이집트 타바에서 벌어진 버스 폭탄 테러로 한국인 4명이 사망하면서 더 줄었다.

 사막마을은 관광 산업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근근이 버티던 이 씨 부부는 결국 지난해부터 생계를 위해 따로 살고 있다. 이 씨는 사막에 남아 드문드문 찾아오는 관광객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고, 남편은 평생을 살아온 사막에서 400km 떨어진 카이로로 가서 중동판 우버 택시 서비스인 카림에서 운전사로 일하고 있다. 하마다 씨는 “외롭긴 하지만 요즘 이집트 경제가 워낙 나빠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아랍의 봄 이전 매달 100만 명을 웃돌던 이집트 관광객은 최근 절반 남짓으로 급감했다. 지난해 10월 러시아 여객기에 이어 올해 5월 이집트항공 여객기마저 추락한 영향도 크다. 국가의 중추인 관광 산업이 침체되자 경제는 추락했고 물가는 치솟았다. 이집트파운드는 공식 환율이 달러당 8.8파운드지만 암시장에선 15파운드에 거래된다.

 사막 투어로 생계를 유지하던 마을 주민들은 속속 일자리를 찾아 카이로로 떠나갔다. 사막을 사랑하는 이 씨라도 남편과 떨어져 1년 넘게 혼자 지내고 있는 요즘에는 고국이 부쩍 그리워진다. 이 씨는 남편과 사막에 놀러 다닐 때 찍은 옛날 사진을 들춰 보며 “나도 많이 늙었네. 이제 내 인생 돌이킬 수도 없는데…”라고 말을 흐렸다. 사막에 온 이래 가장 암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씨는 요즘 매일같이 이 말을 주문처럼 되뇌고 있다. ‘끝까지 버티는 게 이기는 거다’라고. 쨍하고 해뜰 날이 다시 돌아올 거라는 믿음 하나로 이 씨는 오늘도 사막 한가운데서 외롭게 버티고 있다.

바하리야=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이집트 여행#이집트 사막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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