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 인 스타] 문경은 “숱한 패배는 보약…팀 재건? 히딩크식 무한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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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3일 07시 00분


한국프로농구 태동의 원동력이었던 농구대잔치의 슈퍼스타, 그리고 한국농구 슈터의 계보까지. 지도자로 변신해 감독대행으로 첫 시즌 성적은 19승35패, 시즌 9위, 신통치 않은 성적표지만 SK 리빌딩의 성공적 출발, 그리고 오빠부대를 물고다니던 농구대잔치 1세대 스타의 의미 있는 사령탑 데뷔였다.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한국프로농구 태동의 원동력이었던 농구대잔치의 슈퍼스타, 그리고 한국농구 슈터의 계보까지. 지도자로 변신해 감독대행으로 첫 시즌 성적은 19승35패, 시즌 9위, 신통치 않은 성적표지만 SK 리빌딩의 성공적 출발, 그리고 오빠부대를 물고다니던 농구대잔치 1세대 스타의 의미 있는 사령탑 데뷔였다.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대행 꼬리표 뗀 SK 수장 문경은

승부의 세계에선 2등이 필요 없을지 모른다. 오로지 승자만이 기억에 남는다. 그 세계를 들여다보는 팬들의 눈과 귀 역시 승자의 환호와 논리에 길들여져 있는 편이다. 프로농구 SK 나이츠 문경은(41) 감독을 만나면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패장’에게서 과연 어떤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지 막연하나마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인터뷰 시점은 그가 아직 감독대행 신분이던 6일 오후. 19승35패, 9위라는 볼품없는 성적으로 고단한 데뷔 시즌을 마감한지 불과 이틀 만이었다. 그러나 8일 SK는 전격적으로 대행 꼬리표를 떼어줬다. 신통찮은 성적임에도 무언가 내재된 가능성을 엿보았던 것이다. 6강 플레이오프가 한창인 지금, 패장에게서 좀 색다른 이야기를 들어봤다. 문 감독은 12일 연봉 2억8000만원, 계약기간 3년에 정식으로 SK 지휘봉을 쥐었다.

KCC에 26점차 대패…감독대행 데뷔전 ‘악몽’
숙소까지 세시간, 고속도로 차선만 쳐다봤죠
선수 마음을 알아야 능력을 끄집어 낼텐데…

1년의 성장통…나도, 선수들도 팀에 녹아들고
가드 김선형 급성장, 시야 넓어지면 진짜 물건!
포지션별 백업 육성 숙제…내년엔 사고쳐야죠


○‘대학돌풍’ 1세대 스타의 자부심

문경은 감독은 농구대잔치 시절을 풍미한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문 감독과 연세대 멤버들은 당시 대학돌풍의 진원지이자, 오빠부대의 절대 우상이었다. 농구대잔치를 수놓은 쟁쟁한 별들과 그들의 폭발적 인기 덕분에 한국프로농구도 태동할 수 있었다. 어느덧 십수 년의 세월이 흘러 농구대잔치 대학돌풍의 주역이 프로 사령탑으로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농구대잔치 당시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던 1세대 스타다. 그 가운데 제일 먼저 프로농구 사령탑을 맡아 자부심 못지않게 부담감도 컸을 텐데. 한 시즌을 마친 소감이 궁금하다.


“비시즌, (2011년) 5월부터 쭉 준비했는데 초반에 몰랐던 부분도 많았고, 좀 안 좋게 시즌을 시작했다. 나름 자신감도 생겼고, 이제는 지도자의 길이 뭔지도 알겠다. 모든 것에 어떤 방식이나 공식이 있지 않느냐? 한 시즌 동안 많이 배운 것 같다.”

-어떤 점이 제일 아쉬웠나.

“선수 시절 여러 스승님과 감독님 밑에서 ‘내가 지도자가 되면 이렇게 해야지’하면서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시즌을 준비해 시작했는데 제대로 안 됐다. 역시 부상 문제나 선수 개개인의 심리적 상태를 다루기가 쉽지 않았다. 중간에 코칭스태프나 선수들에게 ‘내가 앞으로 완벽한 지도자가 되려면 심리학을 전공해야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 선수들의 마음상태를 알아야 능력을 끄집어낼 수 있다.”

-지난 시즌 개막 전, 호주 전지훈련 때 “나는 대행이니까 6강에 못 들면 잘린다”고 말한 바 있다. 대행 꼬리를 못 떼고 한 시즌을 마쳤는데 아쉬움이나 섭섭함은 없었나.

“나름 목표가 있었다. 12월 말까지 대행을 떼서 좀 힘을 갖고 했으면 했다. 그런 분위기로 갔다. 단독 5위까지 갔고. 하지만 존슨의 부상으로 연패에 빠지고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 대행과 감독의 차이는 크다. 선수기용 측면에서도 대행과 감독은 다르다. 맞지 않는 선수들이 있으면 감독은 안 쓰면 되지만 대행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도 나름 선수들(의식)을 바꿔놓는 데는 성공했다고 본다. 팬들도 다 보고 있는데 교체하면 벤치 들어와 인상 쓰고 앉아 있거나, 타임아웃 하면 저쪽에서 안 오고…. 이젠 한골 넣으면 다들 좋아한다. 그런 모습을 바꾼 것만 해도 1년 헛되이 보내지는 않은 것 같다.”

○댐이 무너졌다? 속 쓰린 개막전의 추억!

지난해 10월 13일 전주에서 열린 2011∼2012시즌 개막전. 디펜딩 챔피언 KCC의 상대는 하필 SK였다. 92-66의 완패. 패기로 똘똘 뭉쳤던 초보 사령탑의 데뷔전은 ‘악몽’, 그 자체였다.

-개막전에서 KCC한테 26점차로 패했다. 그날 경기를 중계한 절친한 후배, 우지원 해설위원은 “경은이 형이 이렇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2002년 아시안게임 결승 때 중요한 자유투를 쐈을 때도 그렇게 긴장하지는 않았다. 주위의 기대가 큰 상황에서 한순간에 댐이 무너지는데 어디를 막아야 할지(난감했고), 표정도 관리해야 하는데 식은땀은 나고. 그 경기 끝나고 숙소까지 세 시간을 버스 타고 가는데 앞자리에 앉아서 고속도로의 차선만 봤다. 숙소 도착해서도 새벽 4시까지 소파에 앉아 담배만 피웠다. 친한 감독님(KT 전창진 감독이라고 귀띔했다)한테는 전화해서 혼나기도 했다. 모 선배님 한분은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선수들이 너의 얼굴을 지켜보고 있다. 널 믿고 한(따라온) 선수들한테는 절대적으로 자신감 있는 표정을 보여줘야지, 당황하는 표정을 보여선 안 된다.’ 그것부터 반성이 됐다. (개막 앞두고)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좋은 지도자가 못 된다’는 소리를 깨고 싶었다. ‘이제 막 2군 코치로 한 시즌을 치른 놈에게 감독대행을 맡겨 SK는 어쩌려고 저러느냐’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나왔고. 그런데 그 한 게임에서 모든 게 잘못돼 버리니까 충격이 컸다.”

○히딩크&박지성, 문경은&김선형

분명 실패한 시즌이다. 그러나 소기의 성과도 거뒀다. SK는 5시즌 연속 홈 15만 관중을 돌파하고, 김선형이라는 걸출한 신인도 배출했다.

중앙대 출신의 가드 김선형은 이번 시즌 54게임 전 경기에 나서 평균 14.9점-2.7리바운드-3.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포지션별 경쟁을 통해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켰다.

히딩크의 무한신뢰 속에 박지성은 월드스타로까지 도약했다. 문 감독 또한 다음 시즌 무한경쟁을 통한 팀 재건을 다짐하고 있다. 또 김선형을 SK의 간판선수로 키우고픈 소망도 드러냈다.

-플레이오프를 TV로 지켜봐야 하는 처지다. 앞으로 팀의 계획, 다음 시즌 준비는 어떻게 되나.

“일단 이번 시즌 가장 발목을 잡았던 부상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포지션별로 두꺼운 선수층을 갖춰야 할 것 같다. 혼혈선수를 뽑을 수 있는 기회도 있고. 김선형이란 선수를 1번(포인트가드)과 2번(슈팅가드) 포지션에 다 쓸 수 있는 선수로 만들어놓았으니까, 주희정 김선형 변기훈에 김효범을 2번에 쓸 수도 있다. 히딩크식으로 경쟁을 통해 컨디션 좋은 선수를 30분, 35분 뛰게 하고, 안 좋은 선수는 10분, 15분 뛰게 하고. 또 기량향상이 더 필요한 선수들, 김선형과 변기훈은 선진농구 코치를 초빙하거나 휴가기간을 짧게 해서 NBA 캠프에 보내 배우게 만들 생각이다.”

-호주 전훈 때 김선형에 대해 “우리 팀의 혈관”이라며 중용할 뜻을 밝혔다. 김선형은 기대대로 괄목할 성장세를 보였다. 김선형이 앞으로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스피드와 돌파력이 뛰어난 선수다. 그 가능성을 꽃 피웠다. 하지만 이번 시즌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성장해야 한다. 자기 플레이에만 급급하지 않고 동료들을 살려주고, 게임을 더 폭 넓게 볼 줄 알아야 한다. 가령 이번 시즌 타임아웃을 불어야 할 때도 선형이가 볼을 잡고 있으면 어느새 골밑까지 가버리는 바람에 힘들었다.(웃음) 지금의 장점에 여유가 필요하다. 앞으로 SK를 대표할 선수로 성장해줄 것이다.”

○내 생애 최고의 팀…동부<연세대<기아?

문경은 감독은 선수로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 프로에선 통산 610경기에 출전해 평균 15.5점(총 9347점)-2.1리바운드-2.2어시스트를 올렸고, 전매특허인 3점슛은 무려 1669개를 성공시켜 아직도 역대 1위를 지키고 있다. 그 출발점은 역시 연세대 재학 시절이다. 그가 주장을 맡은 4학년 때 연세대는 천하무적이었다. 1993∼1994시즌 농구대잔치에서 결승 1차전까지 무려 19전승을 달린 끝에 대학팀 최초의 우승을 달성했다.

-선수 시절 ‘람보 슈터’, ‘돌고래 슈터’ 등 별명도 참 많았다. 그만큼 인기도, 실력도 출중했는데 신동파 이충희 김현준 허재로 이어진 슈터의 계보를 이은 비결은 무엇이었나.

“선천적으로 타고난 게 많았다. 손끝의 감이 남달랐다. 남보다 손이 뻣뻣해서 (농구공의)스핀이 잘 먹는 편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들에 가르침을 많이 받았고, 슈팅 연습을 많이 해서 완성시켰다. 보고 배운 것들도 많았다. ‘김현준, 이충희 선배님은 왜 저렇게 쏠까, 저렇게 하면 잘 들어갈까, 나도 저렇게 되어야 하는데….’ 모방을 좀 많이 했던 것 같다.”

-중·고교와 대학, 프로를 거치면서 몸 담은 팀들 가운데 베스트 팀은 언제였나.

“연세대 4학년 때다. 1·2·3학년 때도 셌지만 4학년 때 팀이 가장 완성도가 높았던 것 같다. 내가 4학년, 이상민이 3학년, 2학년으로 우지원 김훈 석주일, 1학년으로 서장훈. 이 멤버가 최고였다.”

-올해 동부는 16연승에 8할 승률을 올렸다. 농구대잔치 때는 연대와 기아가 가장 강했다고들 하는데 비교하면 어떤가.

“세 팀이 동시대에 전성기를 맞았다고 하면 기아가 제일 셀 것 같다. 일단은 4번(파워포워드)과 5번(센터)에 (김)유택이 형, (한)기범이 형이 탄탄하고 (강)동희 형의 조율에 허재 형의 올라운드 플레이까지 빈틈이 없다. 내가 4학년 때 연세대는 원래 4번에 김재훈이었는데 갑자기 발목을 다쳐서 우지원이 ‘땜빵’으로 들어오면서 빨라지고 강해졌다. 전에는 (서)장훈이랑 재훈이가 4·5번에 함께 서면 스피드에서 밀려 실업팀에 안 됐는데 지원이가 4번을 맡으면서 달라졌다. 기아가 가장 세지만 그래도 연세대 역시 해볼 만한 멤버들이다. 지금 동부는 용병을 빼면 달라진다. 그리고 54경기에 8할이면 진짜 깨기 힘든 기록이지만 농구대잔치 때 (연세대는) 20경기 가깝게 하면서 1패하고 우승한 적도 있다.”

문경은?

▲생년월일=1971년 8월 27일
▲출신교=광신상고∼연세대
▲키·몸무게=190cm·92kg
▲프로선수 경력=1997년 삼성∼2001년 전자랜드∼2006년 SK(2010년 은퇴)
▲프로통산 성적=610경기 평균 15.5점(총 9347점)-2.1리바운드-2.2어시스트, 3점슛 1669개(역대 1위)
▲지도자 경력=2010년 5월 SK 전력분석코치 및 2군 코치∼2011년 4월 SK 감독대행∼2012년 3월 SK 제7대 감독
▲국가대표 경력=1998년 방콕아시아게임(은메달),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금메달)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트위터 @jace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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