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 인 스타] 강동희 “동부 질식수비도 ‘허동택’은 못 막을걸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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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4일 07시 00분


‘의리를 권하며!’ 동부 강동희 감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의리’다. 고 전규삼 송도고 감독의 뜻을 따라 중앙대에 진학했고, 정봉섭 전 중앙대 감독이 원해 기아로 갔다. TG 시절에도 전창진 감독 밑에서 코치 보수 없이 배웠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의리를 권하며!’ 동부 강동희 감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의리’다. 고 전규삼 송도고 감독의 뜻을 따라 중앙대에 진학했고, 정봉섭 전 중앙대 감독이 원해 기아로 갔다. TG 시절에도 전창진 감독 밑에서 코치 보수 없이 배웠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프로농구 원주동부 강동희 감독의 취중진담


동부가 수비농구?…요즘 선수들 1:1에 약해
공격 뛰어난 ‘허동택’ 동부 방패 뚫었을텐데…

감독 수락했을때, 100승은 상상도 못했던 일
선수들이 믿고 따르게 하는 것이 감독 리더십


○웬만해선 동부를 막을 수 없다. 13일까지 13연승, 39승(7패), 승률 0.848…. 최장연승 최다승 최저실점 등등, 프로농구 역사가 모조리 2012년 동부에 의해 갈아 치워질 기세다. 먼 훗날 지금의 동부를 기억할 때, 첫머리에 떠오를 사람은 단연 강동희 감독(46)일 터다. 이미 최단기간·최소시즌 100승을 달성한 강동희 감독을 10일 만났다. 완벽한 1등의 DNA를 알고 싶었다.

-이렇게 압도적인 시즌을 보낼 줄 아셨습니까?

“시즌 전에는 6강 정도 생각했어요. 로드 벤슨이 밀리지 않았고. 초반에 박지현, 위험할 만하니까 안재욱∼윤호영이 받쳐주고. 이광재가 돌아오고 라운드마다 미친 선수가 나와요. 작년에는 3점이 안 좋았는데 올해 상승되면서 좋은 쪽으로 모아지니 팀이 상승세에요.”

-작년하고 멤버가 바뀌지 않았는데요.

“작년이 배움의 시작이라면 올해는 배움의 누적이죠. 잘할 수밖에 없는 게 벤슨 빼곤 다 수비에 재능이 있어요. 윤호영이나 김주성은 큰 키에 빠르고.”

○동부의 특기인 드롭존 디펜스는 강 감독의 역발상 산물이다. 임기 첫해 작은 용병(챈들러)을 커버하기 위해 고민하다 키 큰 선수를 앞에 세우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큰 팀은 김주성, 빠른 팀은 윤호영이 앞에 서 공간을 지배한다.

-동부의 수비농구가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속상하죠. 공격은 마음대로 될 수 없어요. 수비는 어느 정도 전술적으로 가능한데. 그런 저득점이 나오는 것에 관해서는 수비가 좋은 것도 있지만 선수들이 개인 기량을 쌓아야죠. 공격에서 1:1이 강하면 수비가 이길 수 없어요”

○강 감독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예전 농구대잔치 시절 고득점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기술을 가진 선수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동부 질식수비와 ‘허동택’의 기아가 붙으면 어디가 이길까요?

“불꽃 튀는 것이 됐을 거예요. 공격은 저나 허재 형, (김)유택이 형이 이 방패를 뚫을 것 같긴 해요. ‘허동택’에 외국인 선수가 낀다면 기아가 이겨요. 수비에서는 윤호영 김주성이 최고지만 포지션이 다르니 걔네가 우리를 막을 순 없죠.”

-요즘 선수들이 훈련한다고 강동희, 허재가 될 순 없잖습니까?

“한계는 있죠. 근데요, 함지훈 이광재가 늘어서 왔죠. 상무에서 엄청 슛 연습하고 왔어요. 근데 왜 지금 늦게 와서 하냐 이거야. 어렸을 때 매달렸으면 프로에 와서 얼마나 편해. 왜 상무 가서 200개씩 하고. 내가 보기엔 200개도 부족해. 500개, 1000개는 해야 이충희 선배처럼 경지에 도달해요.”

-감독님 현역 때는요?

“저는 현역 때는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어요. 어느 선에 올라서자 안했는데 경지 올라갈 때까지 체육관에서 매트리스 깔고 잤어요. 이충희 선배도 어느 순간 링이 커졌다는 얘기 들었어. 그런 경지까지 가기 위해선 연습이 필요한 거예요. 요즘은 체형은 좋아지고 노력은 줄어들고 있어요.”

-감독님은 천부적이었잖아요?

“타고난 건 허재 형이 타고났죠. 저는 노력이에요. 고등학교 때 허재 형의 농구가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엄청 연습해 모방했죠. 어느 순간 하다보니까 농구 테크닉이 몸에 붙어. 나중에 연대 이상민 농구보고 또 흡수하고 노력하면서 발전시키는 거지. 내가 천재적으로 농구를 잘할 수 있는 체형은 아니잖아요.”

원주 동부 강동희 감독. 스포츠동아DB
원주 동부 강동희 감독. 스포츠동아DB

○아르헨티나 세계선수권에 국가대표로 나갔을 때, 체형만 본 외국인들이 ‘감독 아들로 따라온 줄 알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해보니 감독의 덕목은 무엇입니까?

“처음부터 권위를 만들어야 돼요. 공격, 수비적인 전술에 대해서 우리 감독님은 믿고 따라올 수 있다고. ‘선수들이 시시껄렁하게 생각한다?’ 그럼 나는 자격이 없는 거거든. 내가 내놓는 전술을 따라오게 해야지. ‘무조건 해!’는 아니야. 그러면 자격이 없는 거지. ‘우리 감독님이 얘기하는 거 동의할 만하다. 그래서 성취감을 느끼면 강요하지 않아도 따라오게 돼 있어요. 내가 그런 걸 제시 못하면, 다 농구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럼 내가 껍데기밖에 안 되지.”

-가장 힘든 때가 언제였나요?

“감독 수락하고 난 다음이요. 감독직을 자신감 있어 하지는 않았어요. 성격이 유하고, 카리스마도 없고. 그런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이 있더라고. 현역 때는 상상도 못했는데.”

○강 감독은 100승을 올리고 “8할은 김주성 덕”이라고 했다. 전력적인 이유로 그런 말을 꺼낸 것은 아니라고 했다.

“기둥이 필요했는데 주성이가 해줬으니까 자신감 가졌죠. 주성이가 있어서 감독직 수락한 겁니다. 그거 아니면 전창진 감독(KT) 따라갔을 걸요. 허재 형도 감독 첫해는 힘들었는데 그런 리스크 없이 왔던 것은 김주성이라는 선수가 지켜줬으니까. 그런 점에서 복이죠.”

-감독 첫 승 상대가 허재 감독이었습니다.

“KCC를 제일 강팀이라 생각했는데 이겨서 가장 기억에 남죠.”

-그러나 작년 챔프전은 졌잖아요.

“코트에선 이기고 싶었죠. 그러나 예의적인 것은 갖춰야겠다 생각했고. 허재 형이랑 나의 관계가 있는데 추한 모습 보이고 싶진 않았어.”

-감독님이 너무 얌전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마지막에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형이랑 나랑 추하게 그러는 건 아닌 거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것 같고. 역대 챔프전 중, 항의 한번 없이 서로 농구만 집중해서 6차전까지 치고 박고 잘했잖아요.”

-다시 붙어도 얌전하게 할 겁니까?


“호랑이가 산에 올라가 싸우는 거하고 올라가기 위해서 싸우는 거하곤 다르죠.”

○손해를 봐도 강 감독은 옳다고 믿는 바를 관철하는 인생관의 소유자다. “내가 카리스마 부리고 형들하고 다 싸우고 그랬으면 이런 자리까지 안 왔다고 봐요. 유하게 다 대처했기 때문에 이런 자리까지 왔죠.”

-농구를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인연 같아요. 초등학교 때는 컸는데, 중학교 때 잘렸죠. 그래서 공부했는데 중3 체육시간에 군인들이 농구시합을 하러 왔어요. 그때 내가 농구부보다 더 잘해서 다시 발탁됐죠. (군인들을) 농구의 신이 보낸 거 같아.”

-농구가 재미있었나요?

“재미라기보다는 나의 미래적인 희망을 본거죠. 고1때 다시 하면서 나의 재능으로 좀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가졌죠. 제2의 유재학이니 허재니 하는 게 들리니까. ‘이거 봐라 나도 좀 하면 되겠구나’ 이런 생각 드니까 밤새워 하게 되고, 평범했다면 나도 연습 안했을 거예요. 모든 열정을 거기다 다 쏟아 부은 거지. 내가 성공해 어머님이나 내 가족을 편하게 모실 수 있느냐를 두고 공부냐 농구냐 생각했을 때 가능성이 농구였어요. 절실했었죠.”

-중대를 갔고, 기아를 갔습니다.

“개인적인 욕심보다 (송도고 감독이었던 고 전규삼)할아버지가 원했기 때문이에요. 내가 원한 것은 연대나 고대였어요.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너는 내 제자 아니다’고 쫓아낸 적이 있어. 내가 성격이 독하면 그래도 가는데 ‘죄송합니다’ 하고 중대로 간 거고.”

-실리보다 의리인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 저버리고 연·고대 갈 수 없더라고요. 기아 갈 때도 그랬고. 현대하고 삼성이 강남아파트 20채는 너끈히 살 돈을 베팅했지만 정 부장님(정봉섭 전 중대 감독)이 (기아를) 원했고. 그래도 죽지 않았거든 내가. 그런 게 후회될 때도 있지만 잘 지켜왔다고 봐요.”

○인간 강동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의리’다. ‘진정한 고수는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긴다’는 경구가 떠올랐다. “(TG 시절) 전창진 감독님 밑에서 코치 보수가 없었어요. 내가 배울 게 있고, 얻을 게 있으니 갔죠. 근데 결국은 모든 선택이 다 잘됐어요. 의리, 인간적인 거 지켰기에 올해 좋은 일 있고, 지도자로 3년을 할 수 있었다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람이고, 도리를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이라 봐요.”

강 감독이 왜 적이 없는지 알 것 같았다. 강 감독은 “부드럽지만 헐렁하지 않다”고 스스로를 표현했다. 정말 솜 속에 바늘을 숨긴 사람 같았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트위터@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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