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태훈]곽노현 풀어준 판사 집에 달걀세례… 이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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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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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8시 40분경 보수단체 회원들이 김형두 부장판사의 아파트에 던진 계란이 벽에 붙어 있다.
26일 오전 8시 40분경 보수단체 회원들이 김형두 부장판사의 아파트에 던진 계란이 벽에 붙어 있다.
2010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후보자를 돈으로 매수한 혐의로 기소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은 데 항의해 보수단체 회원들이 실력행사에 나섰다.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공학련) 회원 30여 명은 26일 오전 이 판결을 내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김형두 부장판사의 아파트(서울 강남구 일원동 S아파트)를 찾아가 거칠게 항의했다. 이들은 이 아파트 단지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 부장판사를 겨냥해 “돈 받은 자는 감옥에 넣고 돈 준 자는 풀어준 판결로 사법부를 욕되게 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며 비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중죄인 곽노현을 석방한 김 판사의 모든 재판을 거부한다” “파렴치한 판사가 사는 동네는 아파트 값도 떨어져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나왔다. 일부 회원은 김 판사의 아파트에 달걀을 던지기도 했다.

곽 교육감에 대한 벌금형 선고는 후보를 매수한 사람을 더 엄하게 처벌해온 그동안의 사법처리 전례와 차이가 나는 만큼 공학련 회원들이 판결에 반대 의견을 표시하려는 시도 자체는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후보를 사퇴하고 2억 원을 받은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는 실형 3년을 선고하고, 후보 사퇴 대가로 2억 원을 건네 비난의 소지가 더 큰 곽 교육감에게는 박 교수보다 훨씬 가벼운 벌금 3000만 원을 선고한 것에 대해 언론 등 각계에서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시위는 분명 ‘도(度)’를 넘었다. 곽 교육감 사건의 1심 판결이 정당한지는 상급심 법정에서 판단할 일이다. 판사 집에 찾아가 항의한다고 시시비비가 가려질 일이 아니다. 서울중앙지법 판사들도 이날 “판결에 대한 건전한 비평을 넘어 사법부 구성원과 그 가족의 안전을 위협하고 사법부 독립을 저해하는 행위”라는 공식 입장을 냈다.

이태훈 사회부 기자
이태훈 사회부 기자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MBC PD수첩 제작진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데 불만을 품은 보수단체 회원들이 2010년 1월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 차량에 달걀을 던진 사건은 법치주의를 심각히 훼손한 사례였다.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이 BBK 사건과 관련한 명예훼손죄가 인정돼 실형 1년이 확정된 직후 상고심 재판을 맡은 주심 대법관에 대해 인터넷상에서 무차별적인 신상털기와 인신공격이 이뤄진 것도 사법 절차에 대한 비이성적 도전이었다.

법치주의는 정의를 지키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제도다. 판사도 인간이므로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판결에 불만이 있다고 해서 판사를 힘으로 위협하는 것은 약육강식 논리가 판을 치는 ‘정글’로 돌아가자는 얘기밖에 안 된다.

이태훈 사회부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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