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구가인]10돌 맞아 한숨만 쉬는 예술전용 시네마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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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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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가인 문화부 기자
구가인 문화부 기자
15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 낙원상가 4층의 한 극장. 주말이지만 이 극장에선 ‘뜨는’ 블록버스터 포스터를 볼 수 없다. 상영작은 단 두 편. 20세기 거장으로 꼽히는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1980년)과 1980년대 대표적인 흥행작인 배창호 감독의 ‘깊고 푸른 밤’(1985년)이었다. 별다른 홍보도 없었지만 30년이 지난 영화를 보기 위해 수백 명의 관객이 이곳을 찾았다.

영화 상영 뒤에는 ‘관객과의 대화’ 행사가 열렸다. 큐브릭의 팬을 자처한 이명세 감독, ‘깊고 푸른 밤’의 안성기 씨와 배창호 감독이 방문해 상영작에 대한 얘기들을 관객과 나눴다. 한 20대 관객은 “일반 극장에서 볼 수 없는 고전영화를 스크린으로 보고, 영화에 대해 많은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 극장은 서울 유일의 시네마테크인 ‘서울아트시네마’다. 예술영화관을 뜻하는 시네마테크는 극장인 동시에 영화의 박물관 같은 곳. 뉴욕 런던 베를린 파리 등 세계적인 문화도시에서는 고전영화를 상영하고 영화 문화에 대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시네마테크 여러 곳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도 영화사적 가치가 있는 영화와 각종 기록물을 접할 수 있다. 이날 만난 이 감독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시네마테크는 보물창고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이 ‘보물창고’ 같은 극장이 10주년이 되는 해다. 축제 같은 분위기를 기대했지만 현장에서 만난 여러 영화인은 “앞으로 10년은 또 어떻게 보낼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비영리로 운영하는 이 극장은 정부와 개인, 단체 등의 후원을 받고 있지만 10년 내내 운영 적자에 허덕여 왔기 때문이다. 2010년에는 폐관 위기에 놓인 서울아트시네마를 살리기 위해 영화인들이 맥주 광고에 출연해 후원금을 모으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등도 그 필요성을 인식해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세우겠다고 몇 차례 발표했지만 다른 계획들에 밀려 번번이 무산됐다. 해외에서는 기업의 후원이 활발하지만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영화는 대표적 엔터테인먼트 산업이기도 하지만 100년 역사를 가진 예술이기도 하다. 산업으로서 영화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예술로서 영화의 가치를 인정하기 위한 노력도 함께 필요하다. 매년 영화관을 찾는 관객이 1억5000만 명이 넘고, 영화산업 규모가 1조 원대인 나라의 수도에서 단 하나뿐인 시네마테크가 그 운명을 걱정한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구가인 문화부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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