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의&joy]위장 약한 마라토너

  • 입력 2007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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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마라톤의 기록단축 경쟁은 피를 말린다. 엘리트 선수들에게 보편화된 식이요법도 그 중 하나. 하지만 풀코스 최고기록이 2시간20분대 안팎인 마스터스는 그렇게 철저한 식이요법을 할 필요가 없다. 위장이 약한 사람은 오히려 부작용으로 고생할 수도 있다. 3월11일 열린 2007서울국제마라톤에서 극적인 역전우승을 일군 이봉주(맨 왼쪽)의 역주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현대 마라톤의 기록단축 경쟁은 피를 말린다. 엘리트 선수들에게 보편화된 식이요법도 그 중 하나. 하지만 풀코스 최고기록이 2시간20분대 안팎인 마스터스는 그렇게 철저한 식이요법을 할 필요가 없다. 위장이 약한 사람은 오히려 부작용으로 고생할 수도 있다. 3월11일 열린 2007서울국제마라톤에서 극적인 역전우승을 일군 이봉주(맨 왼쪽)의 역주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80년대 어느 날. ‘한국 마라톤의 대부’ 정봉수(2001년 작고) 코오롱 마라톤감독은 숙소에서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정 감독은 아무 말 없이 고무주머니 2개를 주섬주섬 꺼냈다. 그리고는 한쪽 주머니에 1되가량의 밥을, 또 다른 주머니엔 1홉쯤 되는 밥을 넣었다. 선수들은 그저 정 감독을 멀뚱멀뚱 바라볼 뿐이었다.

잠시 후 정 감독은 선수 2명을 나오라고 하더니 “이것을 2시간 동안 계속 흔들라”며 밥주머니 하나씩을 건넸다. 두 선수는 ‘도대체 왜 이럴까’ 하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말없이 지켜보던 정 감독이 2개의 주머니를 받아들었다. 그 다음 두 주머니의 빈 공간을 가리켰다. 놀랍게도 1되짜리 밥주머니가 1홉짜리 밥주머니보다 빈 공간이 더 많았다. 1되짜리 밥주머니는 손가락으로 가만히 찌르자 푹 꺼질 정도였다. 1되짜리 밥주머니는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지만 1홉짜리 밥주머니는 조금밖에 커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걸 봐라. 사람 위도 똑같다. 밥을 많이 먹고 2시간 넘게 달린 사람은 30km 이후 지점에서 허기가 져서 스퍼트를 할 수 없게 된다. 즉 지구력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평상시 적게 먹어 위를 작게 만들어야 한다. 그 대신 칼로리가 높은 단백질 음식을 먹으면 된다.”

1980년대 일본 마라톤은 세계무대에서 펄펄 날았다. 도시히코 세코가 1981년 보스턴, 1986년 런던과 시카고 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비롯해 1985년 베이징 대회에서 나란히 1, 2위를 차지한 쌍둥이 형제 소 시게루와 소 다케시 등 내로라하는 선수가 많았다.

정 감독은 답답했다. 체구가 비슷한 일본인들이 해내는 것을 왜 우리는 못할까. 틈만 나면 일본으로 날아가 곁눈질로 그들의 훈련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서울로 돌아오면 그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선수들을 맹훈련시켰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우리 선수들은 30km가 넘으면 배가 고파 못 뛰겠다고 징징댔다. 40km부터는 아예 어기적어기적 기다시피 했다.

밥그릇에 수북이 담은 ‘머슴밥’이 문제였다. 한국 선수들은 위가 장구통이었던 것. 가난에 찌들어 자랐던 터라 밥만 보면 2, 3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위가 커질 대로 커져 맹꽁이배는 저리 가라였다. 당시 일본 선수들은 이미 한발 더 나아가 ‘식이요법’까지 하고 있었다. 위를 작게 만드는 것이 평상시 ‘1차 식이요법’이라면 대회 1주일 앞서 하는 게 진짜 ‘2차 식이요법’이었던 것. 하지만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정 감독은 애가 말랐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이를 알아내 우리 선수들에게 적용할 수 있었다. 김완기 황영조 이봉주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한국 일본 유럽 일부 선수들 식이요법 실시

요즘은 아마추어인 마스터스 마라토너들도 식이요법을 하는 예가 흔하다. 하지만 성공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2007 서울국제마라톤 남자마스터스 2위를 차지한 김영복(28·2시간 28분 40초) 씨는 “2003년에 처음 해봤는데 실패했다. 식이요법 기간에 강훈련을 한 것이 탈이었다. 이번 서울국제마라톤에 참가하면서 두 번째(7끼) 해봤는데 솔직히 그 효과는 잘 모르겠다. 훈련량에 비해 잘 뛴 것 같기도 하고, 마지막에 힘이 떨어진 것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라고 말했다. 식이요법은 대개 레이스 6일 전부터 시작한다. 처음 사흘(9끼)은 내리 단백질(쇠고기의 연한 부분)만 먹다가 그 이후엔 집중적으로 탄수화물(밥, 국수 등)을 섭취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인체는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탄수화물을 저장하게 된다. 탄수화물은 달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 즉 글리코겐의 원천이다.

이봉주(37·삼성전자)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레이스 6일 전에 6끼를 먹었다. 평소 8끼에서 2끼를 줄인 것. 오인환 감독은 “아테네 날씨가 너무 더워 자칫 탈진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식이요법이 만능은 아니다. 위장이 약한 선수는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한창 성장하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안 하는 게 좋다. 김이용(34·국민체육관리공단)이 좋은 예다. 김이용은 위장이 유난히 약하다. 코오롱 시절 그는 식이요법 때마다 먹었던 고기를 토해 내기까지 했고, 끝내 위에 난 혹 제거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식이요법은 일본과 한국 그리고 스페인 등 유럽의 일부 마라토너가 요즘도 하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 선수들은 거의 하지 않는다. 세계 최고기록(2시간 4분 55초) 보유자인 케냐의 폴 터갓(38)도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레이스 2, 3일 전부터 탄수화물 섭취를 늘리는 정도가 고작이다. 지구력을 늘리려고 식이요법을 하다가 컨디션을 망치면 흑인들의 장기인 스피드조차 죽는다는 것이다.

○ 날쌘돌이 서정원 방식 활용할 만

식이요법은 1960년대 어느 스웨덴 학자가 제기한 학설에서 시작됐다. ‘인체는 몸 안에 부족한 게 생기면 다음에 더 많이 저장하려는 본능(보상기전)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아프리카 부시맨들의 엉덩이가 볼록한 것은 그들의 ‘사막 적응 흔적’이라고 한다. 부시맨들은 일반인들보다 훨씬 오랫동안 물과 음식을 먹지 않고도 견딜 수 있다. ‘볼록한 엉덩이 밑에 저장해 놓은 에너지’ 덕분이다. 사막에선 어느 땐 배불리 먹지만 어떤 때는 며칠씩 굶어야 한다. 부시맨들은 3만 년 동안 아프리카 남부 칼라하리 사막 덤불(BUSH)에서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엉덩이가 볼록해졌다. 그 볼록한 근육 밑에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에너지를 저장하게 된 것이다.

오스트리아 프로축구리그에서 활약하는 ‘날쌘돌이’ 서정원(37·SV리트)도 식이요법을 활용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고기류를 많이 먹고, 경기가 있는 토요일 전후인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밥이나 스파게티 등 탄수화물을 주로 섭취한다.

그렇다. 마스터스 마라토너들도 서정원 식으로 하면 될 것이다. 무리한 식이요법은 아예 안 하는 것보다 못하다. 최근 식이요법으로 후유증을 겪는 마스터스가 부쩍 늘었다. 황규훈 대한육상연맹 전무는 “풀코스를 2시간 20분대에 완주하는 정도라면 식이요법을 안 하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한다.

▼ 어린이는 10km 이상 달리면 안돼요▼

‘어린이에게 너무 먼 거리를 달리게 하지 마세요.’

어린이는 원기회복이 빠르다. 힘들어도 금세 회복된다. 하지만 무릎과 발목이 약하다. 게다가 뼈끝에 연골세포로 된 성장판이 있다. 성장판과 뼈는 매우 여리고 약하다. 이곳에 심한 충격이 가해지면 연골세포가 다친다. 뼈에도 금이 가기 쉽다. 피로골절이 발생하기도 한다. 심하면 종아리나 정강이 근육이 기능을 잃을 수도 있다.

가끔 일부 매체에서 초등학생 어린이가 하프코스(21.0975km)에서 입상한 것이 화제로 다뤄진다. 어른보다 원기회복이 빠르기 때문에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이가 너무 먼 거리를 달리면 자칫 성장판이 손상될지도 모른다. 국제스포츠의학회는 나이에 따라 달리는 거리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9세 이하 3km, 10∼11세 5km, 12∼14세 10km, 15∼16세 21.1km, 17세 30km’가 그것이다.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려면 18세가 넘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달리는 시간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18세 이전엔 1회 1시간 30분을 넘지 못하게 한다. 그것도 14세까지는 1주일에 3회, 15∼18세는 1주일에 5회를 넘겨서는 안 된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는 뼈가 굳어야 비로소 할 수 있다. 뼈가 굳는 나이는 인종, 남녀, 개인에 따라 각각 다르다. 서양 남성들은 19∼20세가 되면 뼈가 완전히 굳어 마라톤 풀코스를 뛸 수 있다. 동양 남성들은 이보다 1∼2년 늦다. 여성은 남성보다 1∼2년 빠르지만 한국 여성들은 서양 여성보다 약간 늦게 뼈가 굳는다. 국내 감독들은 남자 선수의 경우 대학 3, 4학년이 돼야 풀코스를 처음 뛰게 한다. 대학 1, 2학년 때는 하프코스를 뛰다가 기권하는 게 보통이다.

김화성 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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