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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의 우리거리 읽기 8]일그러진 일산주택단지

입력 1999-03-01 20:37업데이트 2009-09-2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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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이 어른어른커늘 님만 너겨 펄떡 뛰어 뚝 나서보니, 님은 아니 오고 으스름 달빛에 열 구름 날 속였고나….’

시조 한 수는 남겼으나 이름은 남기지 않은 이. 요즘의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면 그는 버선발로 마당에 뛰쳐나오는 대신 경비실에 전화를 했을 것이다. “도둑이 들었나봐요”.

그 무명씨가 살던 집을 그려보자. 대청 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방이 하나씩 있었을 것이다. 한옥에서 방과 마루는 한 줄로 서 있었다. 대들보의 길이에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형 한옥에는 땅이 좁다는 제약이 하나 더 붙었다. 건물은 ‘ㄴ’자나 ‘ㄷ’자로 꺾여야 했다.

마당은 그 의미가 각별해졌다. 집의 상징적 중심은 안방이어도 기능적 중심은 마당에 있었다. 집에 들고나는 이가 모두 마당을 거쳐야 하는 만큼 마당은 집안의 희노애락이 모이고 흩어지는 곳이었다.

콘크리트가 나무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집의 모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들보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집의 폭이 가능해진 것이다. 방들이 좀더 밀집되어 배치되었다. 정지는 부엌, 변소는 화장실이 되어 집안으로 들어왔다. 아궁이에서 장작을 지피던 시대는 지나고 연탄이 그 자리에 들어섰다. 광에, 혹은 지하실에 연탄을 배달시켜 쌓아 놓았다. 집집마다 대문 앞에는 타고남은 연탄재가 몇 개씩 놓여 있는 것이 우리의 주택가 풍경이 되었다.

평평한 지붕을 가진 집도 등장했다. 옥상은 새로운 마당이었다. 볕도 잘 드니 빨래도 잘 말랐다. 하지만 옥상이라는 마당을 얻은 대신 다락을 잃게 되었다. 평평한 지붕의 다음 단계는 아파트였다. 편리한 주거형식의 상징이 된 아파트는 서서히 단독주택을 밀어냈다. 굽이굽이 골목길을 일러주지 않아도 짜장면이 배달됐다.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산 중턱에 무신경한 모양의 이십 층 짜리 아파트를 세워놓았다.

아파트에서는 마당, 헛간, 다락, 지하실이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아파트에 살아도 김치는 먹어야 했기에 장독을 놓을 자리가 필요했다. 빨래도 널어야 했다. 사람들은 다락과 마당을 대신할 만한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당연히 베란다가 눈에 들어왔다. 새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베란다를 막아달라고 샤시가게에 전화부터 했다. 불법증축이었다. 법을 지키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은 법을 바꾸어야 했다. 베란다는 아파트가 외부로 면한 얼굴. 이곳에 잡동사니가 쌓이면서 우리의 거리는 창고로 둘러싸이게 되었다. 서로 다른 가게에서 주문한 샤시와 그 너머의 빨래, 상자, 항아리가 거리를 향해 아우성을 치듯 쌓여 있었다. 에어컨 실외기와 접시안테나도 매달렸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화려해도 거리풍경은 난삽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아파트가 등장하면서 우리의 주거 문화는 숫자로 치환되었다. 소수점까지 면적을 따져 챙겼다. 방은 몇 개냐고 물었다. 분양할 때 방을 좁아 보이게 하는 붙박이장은 금물이었다. 유럽풍 실내장식을 했다고, 우아한 원목마루를 깔았다고 집의 표면만 강조하는 광고가 줄을 이었다. 창고 없는 집은 주머니 없는 옷과 다를 바가 없다. 막 피난을 떠나려 짐을 꾸리다만 집처럼 두서없이 잡동사니가 방의 이곳저곳에 돌아다니고, 이사 때면 전생의 업보처럼 장을 메고 다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주거문화가 되었다.

일산 신도시는 토지개발공사가 만든 야심작이다. 보행자 중심의 도로를 만들고 곳곳에 공원을 만들어 놓은 주거환경의 노작이다. 그런데 토지의 분양이 이루어지면서 벌어지는 사건은 달랐다. 들어서는 아파트는 여느 아파트와 다를 바가 없었다.

진정한 희극은 단독주택단지에서 생겼다. 토지개발공사는 도시설계지침에 몇 가지 강제사항을 달아놓았다. 마당을 가리는 담장을 칠 수 없고 건물에는 일정한 경사를 지닌 지붕을 얹게 한 것이다. 그러자 기상천외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방바닥에 등을 지지고 김치를 퍼낼 항아리를 놓아야 하는 생활, 현관문을 들어서면 신발 벗어둘 신발장이 있어야 하는 생활양식은 변함이 없었다. 우리는 원래 그런 민족이다. 그러나 여기 국적이 모호한 껍질이 입혀졌다. 미국의 시골 목조주택이 등장했다. 우체통까지 미국에서 보던 것을 고스란히 베껴왔다. 캐나다의 호숫가에서 본 통나무집도 등장했다. 이도 저도 아니되 인조석을 도배한 집도 등장했다. 이들이 난수표처럼 섞여 서로 어깨를 맞댄 신기한 거리가 만들어졌다. 이 거리는 유토피아를 향한 꿈을 꾸는 신랑신부가 야외 촬영하는 장소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법규에 따라 마당의 한 부분을 주차장으로 쓰겠다고 하고는 실제로는 여기 잔디를 심어 뜰을 만들었다. 자동차는 길에 세워놓았다. 정말 배워야 할 준법 정신은 그냥 두고 껍데기만 수입되었다. 미국대통령이 타원형 탁자에서 국무회의를 하더라고, 우리도 그렇게 바꾸자고 윗물의 물고기들이 앞장서던 나라니 아랫물의 피라미들이 미국의 껍데기를 따라감이 무슨 허물이 되겠는가.

일산의 주택단지는 우리 시대의 초현실 같은 현실이다. 필요한 것은 근처 구멍가게가 아니고 대형할인매장에서 사는 도시, 사람은 보이지 않고 무대장치 같은 집들만 보이는 거리. 집은 요란한 치장을 했어도 집과 집 사이에는 깰 수 없는 침묵의 벽만 존재하는 거리. 내가 아닌 우리, 몸이 아닌 마음을 담을 곳은 여기 어느 구석에 있는가.

마음은 수치로 가늠할 수 없다. 깍두기가 모자라면 좀 퍼가라는 인심도 교환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었다. 불편해도 서로 섞이고 부대끼는 거리가 가치가 있다. 빨간 손이 나올 지, 파란 손이 나올지 조마조마해 하던 변소, 음악처럼 빗물이 떨어지던 처마, 흔들리는 나뭇잎이 비춰지는 문풍지. 이런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생활의 시를 쓰게 한다. 그리고 이것들을 옆집 꼬마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함께 나눔의 거리가 우리가 찾아갈 유토피아다.

서현<건축가>hyun1029@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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