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훈의 세상스크린]부드럽게 얘기해요

  • 입력 2000년 12월 6일 19시 01분


1991년부터 2년간 미국 뉴욕대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과제물을 영어로 쓰는 일이 큰 부담이었습니다. 처음 얼마간은 영어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아 우선 한국말로 과제물을 작성한 뒤 영어로 번역하는 비능률적인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내용인데도 우리말로 A4용지에 깨알같이 쓴 글을 영어로 쓰면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그는 학교가는 게 싫었다. 그래서 어제 하루종일 학교에 가야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깊이 심사숙고했다’는‘He didn’t like going to school. That’s why he was deeply considering wheather he was going to school or not yesterday’보다 그냥 ‘He didn’t want to go to school’로 그냥 핵심만 이야기하는 것이 영어 문맥에는 더 어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랭귀지 스쿨을 다닐때 영어 선생님은 글을 쓸 때 ‘간결(simple)’ ‘명확(clear)’ ‘핵심(point)’을 늘 염두에 두라고 항상 강조했습니다.

뉴욕에서의 첫 겨울,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던 같은 과 미국 친구가 센츄럴 파크에서 함께 스케이트를 타지 않겠냐며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저는 ‘간결’하게 핵심을 이야기했습니다.

“나 스케이트 별로 안좋아해. 그리고 지금 좀 피곤하거든.(I don’t like skating. And I’m tired to do that.)”

졸업후 한국으로 오기 직전 그 친구와 그 때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제 직설적 답변에 참 당황했다고 합니다.

그런 경우 미국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식으로 답변한다고 합니다.

“야 재밌있겠다. 그런데 약속이 있는데 어떡하지? 다음엔 같이 가자. 내게 제안해줘서 고맙다.(Oh! great. It’ll be nice. But I have an appointment. Why don’t we see next time. Thanks for asking me.)”

물론 영어가 모두 간결하고 논리적이고, 우리말은 장황하고 토가 많다는 뜻은 아니지만, 우리는 비교적 공식적 글과 발언은 무척이나 예의를 갖추어 조심스럽게 결론에 접근하는 반면 사적 인간관계에서는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배려 없이 너무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난 네 그런 점이 너무 싫어”보다는 “네가 그 점만 바꾼다면 더 매력있어질텐데”가, “그 때 네 실수는 치명적이야”보다는 “그 때 네 실수가 작지는 않았지만 너를 돌아다보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았겠니?” 같은 식의 표현이 인간 관계를 좀 더 부드럽게 만들지 않을까요?

직설적, 단도직입적 표현으로 받는 상처가 솔직하고 숨김없었다는 장점보다 더 클 수 있을테니까요. 그래서 사람은 살면서 가끔은 돌려서 표현하면서 살아야 하나봅니다. 그게 ‘중요한 예의’가 되기도 하니까요.

joonghoon@seromesof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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