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149>

  • 입력 2009년 8월 2일 13시 30분


제31장 통나무집의 혈투

서사라를 태운 트럭이 향한 곳은 특별시의 남서쪽 관악산이었다. 경사가 심한 숲길에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던 트럭이 구비를 꺾자마자 함정에 빠지듯 지하로 사라졌다. 스마트폰이 반짝인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씨이…… 바빠요!"

남앨리스가 전속력으로 따라붙으며 투덜거렸다. 홀로그램으로 은석범의 얼굴이 떴다.

"거기 어디야?"

"나중에, 나중에 얘기해요. 어이쿠."

지하로 들어서자마자 돌부리에 채인 듯 차가 크게 한 번 출렁였다. 정수리를 천장에 찧은 앨리스의 입에서 다시 욕이 튀어나왔다.

"어쭈, 지랄…… 너희들 오늘 다 죽었어!"

도로는 나사처럼 둥근 원을 그리며 자꾸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 6층, 아니 7층만큼 깊다. 너무 어두워 앞을 볼 수 없자 앨리스는 자동거리조절 시스템을 켠 채 질주했다. 따로 보안청 중앙컴퓨터와 접속하여 이 도로를 검색했지만, 특별시 공인 도로망에는 지하 1층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러니 우리가 못 찾지."

지하 11층에 이르니 직선 도로가 펼쳐졌다. 자동차 두 대가 겨우 엇갈릴 만큼 좁은 2차선이었다. 그 길로 1분 쯤 달리자 갈림길이 나왔다. 앨리스는 차를 멈추고 스마트폰을 켠 후 위치추적 시스템을 가동시켰다. 왼쪽 길에서 붉은 화살표가 점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앨리스는 핸들을 왼쪽으로 꺾었다. 이번에는 자동차가 나선을 그리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상으로 나오니 다시 숲길이었다. 비포장 돌길이었기 때문에 차가 몹시 흔들렸다. 보안청 중앙컴퓨터와 접속을 시도했지만 불통이었다. 서울특별시 경계 안이라면 어디서나 소통이 가능한 것이 원칙이지만, 강력한 방해 전파를 특정 지역에 우산을 펴듯 강하게 쏘면 불통이 될 수도 있었다. 대체 이 산 속에 뭘 감췄기에 방해 전파까지 쏜단 말인가.

"어휴, 어휴!"

앨리스가 분통을 터뜨렸다. 화장품이나 옷 구입비는 아껴도 자동차에는 돈을 뭉텅뭉텅 쏟아 붓는 그녀였다. 한껏 멋을 내며 최고 속도로 질주할 때의 짜릿함이여!

자동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주먹으로 얻어맞는 것처럼 아팠다. 관악산 숲길로 접어들 때부터 불길했는데, 예감이 적중한 것이다.

"뭘 하는 놈들일까?"

앨리스가 머리를 다시 천장에 박은 후 뇌까렸다.

사라의 몸에 심어둔 칩이 스마트폰 위치 추적에 뜬 것은 어제 정오였다. 석범과 앨리스는 사라의 움직임을 따라서 볼테르의 집 앞까지 갔다. 그리고 밤을 새워 잠복근무를 섰다. 새벽에 사라 혼자 집을 빠져나왔을 때, 졸고 있는 앨리스를 석범이 툭 쳐서 깨웠다.

"놓치면 각오해."

석범이 내린 뒤, 앨리스는 사라를 태운 검은 자동차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사라가 급히 멈춘 차에서 내려 건물로 뛰어들어갔다. 앨리스는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여러 묘책을 짜냈다. 그러나 2미터가 훌쩍 넘는 사이보그 사내들이 서 있는 철문을 제외하곤 출입구가 없었다. 보기만 해도 몸에 총 한두 자루 쯤은 지닌 얼굴들이다.

위치 추적 장치에 뜬 사라의 화살표가 심하게 흔들렸다. 격한 움직임 때문에 과도한 열이 발생할 때 생기는 노이즈였다. 아예 칩을 단 기계몸이 부서지기라도 하면, 위치 추적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걱정하던 차에 사이보그 경비원들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리고 곧 사라와 난쟁이 사내를 등에 태운 반인반수족이 태연하게 그 문으로 걸어 나왔다. 앨리스는 곧장 달려들어 사라를 구할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로봇 트레이너이자 격투가인 서사라를 기절시킨 불청객의 정체가 궁금했기 때문에 일단 미행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흙먼지 날리는 숲길을 달리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앨리스가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가지가 넓게 벌어진 아름드리 해송 아래 트럭이 멈춰 선 것이다. 마당을 가로질러 아담한 통나무집이 보였다. 트럭에서 내린 난쟁이 사내와 반인반수족이 사라를 등에 업은 채 통나무집으로 들어갔다.

앨리스는 차에서 내려 소리 없이 차 앞문에 기대앉았다. 석범에게 보고하려 했지만 여전히 스마트폰은 불통이다.

어쩌지? 상황을 더 살펴야 하나, 들어가야 하나?

통나무집 안에서 여자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악!"

앨리스가 반사적으로 총을 뽑으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꼬부랑 할머니처럼 허리를 잔뜩 굽힌 채 트럭까지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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