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구려 빼앗기’]<2>중국정부 이중적 행보

  • 입력 2004년 8월 6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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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철저히 이중적이다. 학술적 차원의 해결을 먼저 제안하고도 4월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고구려를 삭제했다가 한국의 거센 항의에 아예 정부 수립 이전 역사를 지워버렸다. 외교 분쟁 확대를 모면하기 위해 문제를 일단 덮어버리겠다는 태도다. 한편으로 고구려사 왜곡의 산파역인 국책사업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예정대로 추진하고 있으며 고구려 유적이 산재한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에서는 관광객 등을 상대로 ‘고구려사는 중국사’라는 현장 교육도 계속하고 있다.》

▽‘역사 침략’은 계속될 것=한중간 외교 접촉과 관계없이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기 위한 중국측의 논리 개발과 자료 축적 작업은 계속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한 조선족 학자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만주지방에 대한 역사적 인식, 한반도 통일 이후의 상황, 중화주의적 역사관 등 다양한 요인이 얽혀 있는 만큼 한국이 시정을 요구한다고 해서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만주 역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족이 만주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기간은 1955년 이곳에서 독립 왕국을 건설하려 했던 가오강(高岡)사건 이후 채 50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조선 고구려 발해로 내려온 한민족과 요(堯) 금(金) 청(淸) 등 북방민족이 만주를 지배해온 데 이어 러시아의 침탈과 일본의 만주국(1932∼45) 건국으로 이 지역에서의 역사적 연고가 취약한 중국으로서는 이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중국은 한반도 통일 이후 간도 귀속문제 등을 둘러싸고 영토분쟁이 일어날 가능성과 함께 통일 과정에서 북한 난민의 대거 유입으로 북-중 접경지역이 한국의 영향권에 들어가면 역사적 연고권이 또다시 약화될 것으로 우려한다”며 “고구려사 왜곡은 이런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고구려사 왜곡의 추진 주체는?=고구려사 왜곡 작업인 ‘동북공정’은 국무원 산하 중국 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이 주관한다. 대부분의 중국학자들은 사회과학원의 동북공정 사업에는 순수 학술연구의 차원을 넘어 정치적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학자는 “중국 학계에서 발해사와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지만 한반도 역학관계의 급격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시점에 국책 연구기관을 통해 이를 강력히 추진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 통일은 ‘완충국’인 북한이 소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를 우려한 동북지방 정부와 이 지역의 중화주의적 역사관을 가진 학자들이 국경선을 현 압록강∼두만강에서 확실하게 결정지어야 한다는 점을 상부에 건의하고 이를 공산당 최고위 간부들이 수용했을 것으로 본다”고 추측했다.

▽수면 밑 비판의 목소리=중국 학계에서도 자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없지 않지만 사회체제 특성상 전혀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

한 중국학자는 “중국민들이 고구려나 고려, 조선 등이 중국에 조공을 바쳤던 변방의 속국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고구려사를 중국 역사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면서 “이는 고대 중국 역사서에도 나와 있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구려사는 한국 역사의 핵심인 만큼 이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데 한국민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러나 정부가 잘못한다고 해서 이를 드러내놓고 말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중국의 한 국제정치 전문가는 “세계무대에서 중국의 급격한 국력 신장에 따라 ‘중국 위협론’이 나온 데 이어 대만문제 등을 둘러싸고 중국은 미국 일본 등과 잠재적 충돌 가능성을 안고 있다”며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역사 문제 때문에 한국을 반중(反中) 대열로 돌려세우는 것은 중국의 외교 전략상 큰 실수”라고 정부정책을 비판했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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