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엽 교수의 이미지로 보는 세상]슬픈 영화의 즐거움

  • 입력 2001년 1월 30일 18시 56분


비극의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은 슬프다. 그런데 우리는 슬픈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한 관람을 즐긴다. 비극의 슬픔을 즐기는 이런 패러독스를 비극의 패러독스라고 일컫는다.

◇꾸며낸 슬픔에서 재미

연극에서의 이런 패러독스는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우리는 슬픈 영화를 즐긴다. 분단의 슬픔을 그린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흥행에 대성공을 거뒀다.

그런데, 슬픔을 즐기는 일이나 슬픔에 재미를 느끼는 일은 잘못이 아닌가? 상황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자. 여러분의 친구나 아들이 공동경비구역에서 군복무를 하다가 비극적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그 죽음의 과정이 비디오 카메라를 통해 필름에 담겼다.

이 경우, 여러분은 그 필름에 담긴 모습을 즐기기는 힘들다. 그 모습을 보고 난 후 ‘재미있다’ ‘감동적이다’라고 감탄할 수도 없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실제의 슬픈 사건을 즐기는 일과 영화 속의 슬픈 사건을 즐기는 일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조난당한 사람의 실제 고통을 바라보며 즐기는 일은 잘못이지만, 그러한 고통이 벌어지는 영화의 장면을 바라보며 재미를 느끼는 일은 잘못이 아니다. 영화 속의 슬픈 사건은 실제 사건이 아니라 꾸며낸 가상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꾸며낸 사건이라고 해서 우리가 무턱대고 즐기지는 않는다. 영화 속의 꾸며낸 슬픈 사건들 중 그럴 듯하게 잘 꾸며낸 사건만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사건의 줄거리가 뒤죽박죽이고 터무니없다면 우리는 즐거움이 아닌 괴로움이나 불쾌함을 느낀다.

줄거리, 연기, 음악 등이 모아져 슬픔을 잘 꾸며 놓은 경우에만 우리는 즐거움을 누린다. 그러므로 슬픈 영화를 즐긴다고 했을 때, 우리는 영화 속의 인물이 겪는 슬픔을 즐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슬픔을 꾸며낸 솜씨를 즐기는 것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슬픈 영화다. 이 영화의 슬픔은 남북병사들의 인간적 정이 분단이라는 현실 때문에 붕괴된다는 데 있다. 붕괴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왜 공동경비구역에 근무하는 남북병사들이 인간적 정을 쌓게 되었는가가 영화속에서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다. 또 그들이 왜 마지막 날의 이별을 그토록 아쉬워했는지에 대해서도 잘 설명되어 있지 않다. 영화의 고비마다 불쑥불쑥 등장하는 농담은 그 아쉬움의 정체를 모호하게 만들며 슬픔을 꾸며내는 솜씨를 훼손시킨다.

◇솜씨 서툴면 되레 괴로움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영화의 이미지들을 눈부시게 변모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미지들이 솜씨있게 처리되지 못한다면, 그 이미지들은 우리에게 괴로움이나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 적어도 예술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미지 자체가 아니라 그 이미지들을 꾸며나가는 인간의 솜씨이다. 이미지의 시대란 결국 인간의 능력을 또 다른 방향에서 개발해 나가는 인간을 위한 시대가 돼야 한다.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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