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최경주(41·SK텔레콤). 어지간한 상황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법한 그도 연이어 진기한 장면이 쏟아지면서 어안이 벙벙했다. 마스터스 최종일 동반자였던 샬 슈워츨(27·남아공) 때문이었다.
선두에 4타 뒤졌던 최경주는 11일 4라운드에 앞서 “5타를 줄이면 우승할 만하다”고 의욕을 보였다. 발음조차 까다로운 슈워츨은 안중에도 없었다. 하지만 출발부터 희한한 상황이 벌어졌다. 슈워츨은 1번홀(파4) 그린 밖에서 6번 아이언으로 굴린 30m 가까운 어프로치 샷이 칩인 버디로 연결됐다. 3번홀(파4)에서는 114야드를 남기고 샌드웨지 두 번째 샷이 그린 경사를 타고 왼쪽으로 휘어지더니 홀로 빨려 들어가 이글을 낚았다.
최경주도 가만있지 않았다. 7, 9번 홀 버디로 선두를 1타 차까지 바짝 쫓았다. 아멘코너 12번홀(파3)에서 보기를 했지만 15번홀 버디로 추격의 고삐를 당겼다. 그러나 17, 18번홀 연속 보기로 고개를 숙였다.
최경주는 공동 8위(8언더파)에 머물렀어도 9년 연속 출전한 마스터스에서 아시아 간판스타다운 끈질긴 모습을 보여 갤러리의 찬사를 들었다. 이 대회에서 2004년 단독 3위, 지난해 공동 4위 등 유독 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코스를 훤히 꿰뚫고 있는 데다 국내와 비슷한 분위기에 높은 탄도의 페이드 샷을 잘 치는 자신의 구질과 궁합이 맞아서다. 오거스타의 그린은 경사를 활용한 공략이 필수인데 최경주는 이런 점을 적절히 활용했다. 최경주는 이 대회에서 드라이버는 테일러메이드 R11, 아이언은 핑 i15, 하이브리드는 아담스골프, 웨지는 타이틀리스트, 퍼터는 오딧세이를 사용했다. 늘 변화를 추구하는 그는 클럽 선택에서도 최상의 성능만을 따질 뿐 단일 브랜드를 사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깼다. 상위 16위 이내 선수에게 주는 내년도 자동출전권을 확보한 최경주는 “후회 없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열광적인 갤러리 속에서도 중압감을 이겨냈다. 몇 가지만 보완해 내년에는 정말 우승하겠다”고 말했다.
행운의 사나이 슈워츨은 후반 한때 공동 선두만 5명에 이르는 유례없는 혼전 상황을 강한 뒷심으로 극복했다. 15∼18번홀 3.5∼4.5m의 만만치 않은 퍼트를 모조리 성공시키며 대회 사상 첫 마지막 4연속 버디를 낚아 합계 14언더파로 첫 메이저 타이틀을 안았다. 우승 상금은 144만 달러. 유럽투어 통산 6승을 거둔 그는 세계 랭킹을 29위에서 11위까지 끌어올렸다. 라운드당 평균 퍼트 수를 26.75개까지 떨어뜨린 게 승인이었다. 전직 프로 출신으로 양계장을 하는 아버지에게 골프를 배운 그는 남아공의 전설적인 골퍼 개리 플레이어가 처음 그린재킷을 입은 지 50주년 되는 뜻깊은 해에 남아공 출신으로는 세 번째로 정상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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