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챈들러의 한국 블로그]미국인이 한국 의료에 4번 놀란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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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루크 챈들러 미국 출신·서울대 국제대학원 재학
루크 챈들러 미국 출신·서울대 국제대학원 재학
며칠 전 저녁, 볶음밥을 해 먹기 위해 참치 캔을 따다가 엄지손가락을 크게 벤 적이 있다. 처음엔 괜찮은 것 같아 그냥 두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피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상처가 너무 깊어 꿰매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치료를 받기 위해 선뜻 병원에 갈 수 없었다. 지금까지 한국에 살면서 병원에 간 적이 없었고, 더군다나 언어의 장벽이 있는 타지에서 병원 치료를 받는 것은 복잡하고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껏 진료나 치료는 미국에서만 받아 봤다. 이번에는 마음을 크게 먹고 한국 병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미국에서처럼 한국 병원에서도 하루 종일 기다리고 어마어마한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 같아서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너무도 무거웠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예약하지 않으면 담당 의사를 만나기 전까지 3, 4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기본이다. 예약을 잡아도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병원에 들어가자마자 진료 신청을 마친 후 소파에 앉았다. 오래 기다릴 것을 예상하고 갖고 간 책을 펼쳤다. 한 장 정도 읽었을 무렵,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러 바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상처를 보고 10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치료를 끝내 주었다. 한국의 빠르고 정확한 치료에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꿰매는 몇 분간은 치료비가 너무 걱정됐다. 미국에서 치료받을 경우 적게는 40만 원, 많게는 80만 원까지 내야 하기 때문에 이번 달 내 생활비를 아껴 쓸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간호사가 처음 금액을 말했을 때, 밤새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청력이 약해져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결국 몇 만 원으로 이 모든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후 처방약을 받으러 약국에 갔다. 미국에서도 처방전이 필요 없는 진통제 같은 약은 비교적 저렴한 편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약에 따라서 치료비만큼의 비용을 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 치료비가 너무 저렴했기에 ‘그렇다면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약으로 돈을 벌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약국에서도 몇 천 원으로 3일 치 약을 받았다. 태어나서 이렇게 간편하고 저렴한 의료 서비스를 받아 본 것은 처음이다.

한국인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나의 치료 경험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궁금한 마음에 더 조사해 본 결과, 한국의 의료 서비스는 낮은 가격으로 통제돼 있다. 물론 이런 가격 통제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문제점도 있다. 진료비가 정해져 있다면 의사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성형 혹은 피부과 시술같이 보험처리가 안 되는 진료에만 집중하거나 최대한 많은 환자를 받는 방법을 쓸 것이다. 그래서 ‘3분 혹은 5분 진료’ 같은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다. 얼마 전 손가락 실밥을 뽑으러 토요일에 병원을 갔다. 우선 토요일에도 병원을 연다는 것에 놀랐고 평일보다 더 많은 환자를 받는 것에 또 한번 놀랐다.

이렇게 환자를 많이, 급하게 받는 것을 두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미국의 의료 시스템을 경험하면 이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미국에선 비싼 진료비와 비효율적인 병원 시스템 때문에 치료받기가 힘들다. ‘5분 진료’라도 많은 사람을 빠르게, 그리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치료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 특히 외국인들은 한국의 의료 서비스에 대해 오해가 많은 것 같다. 외국인들이 한국 의료 서비스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역에서 흔히 보이는 성형외과 간판일 것이다. 물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종합 의료 서비스가 잘 갖춰져 있다는 사실도 한몫할 것이다. 미국은 건강보험이 없어 30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비싼 치료비를 내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의료 서비스는 보고 배울 점이 많다.

루크 챈들러 미국 출신·서울대 국제대학원 재학  
#의료보험#의료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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