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방형남 칼럼]대통령 마음만 숯검정인가

  • 입력 2004년 7월 14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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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들은 여름이 되면 일제히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7월족(族)이 될 것인가, 8월족이 될 것인가. 7월에 휴가를 가면 7월족(쥐에티스트·juilletiste)이고, 8월 한 달을 휴가기간으로 선택하면 8월족(아우시엥·ao^utien)이 된다. 교회와 성당도 7, 8월에는 문을 닫는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한 달씩 휴가를 가기 때문에 성직자도 어쩔 수 없이 바캉스대열에 합류해야 한다.

프랑스만은 못하지만 우리에게도 휴가라는 좋은 제도가 있어 무더위를 이기게 한다. 길어야 1주일이 보통이지만 여름휴가는 모든 국민의 꿈이다. 여름휴가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의 기초조직인 가정의 삶까지 윤택하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국민이 주인이라더니▼

그러나 올 여름휴가는 예년 같지 않다.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2%가 수입 감소 등의 경제적 이유로 여름휴가를 포기했다고 답했다. 주머니 사정이 발목을 잡지 않는다 해도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느긋하게 휴가를 즐길 분위기가 아니다.

위에서부터 그런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은 행정수도 이전논란에 대해 언급하며 “대통령의 마음은 숯검정이 돼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속이 까맣게 탄 대통령,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노 대통령의 마음만 숯검정이 되었겠는가. 이 의원은 ‘주군(主君)’을 향한 충성심을 그렇게 표현했겠지만 자신을 뽑아준 지역구 유권자들을 잊지 않았다면 국민의 타는 가슴을 더 걱정해야 한다. 똑같이 속이 편치 않지만 대통령에게는 충성스러운 측근들이라도 있다. 힘없고 기댈 데 없는 국민은 과연 누구로부터 위로를 받는단 말인가. 출범할 때 ‘국민이 주인입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던 현 정권의 핵심세력들이 위만 쳐다보면 국민은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휴가는 왜 있을까.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여행을 위해, 고달픈 현실을 잊기 위해…. 수많은 대답이 있을 것이다. ‘재충전을 위해서’라는 답도 모범답안이 될 만하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십 년 일해야 하는 인간의 몸과 마음에 힘을 불어넣기 위해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목표를 달성하려면 편안한 마음으로 떠나, 휴가기간이나마 아무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어야 한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면 프랑스인들은 여름휴가가 끝나는 9월 초를 항트레(Rentr´ee)라고 한다. 문자 그대로 하면 ‘휴가에서의 복귀’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 각급 학교의 새 학년이 시작되고 휴가를 끝낸 어른들은 다시 생업전선에 뛰어든다. 충분한 휴식으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한 뒤 새로운 각오로 일을 재개하는 것이다. 9월이 되면 ‘프랑스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활기가 넘친다.

국력이 별 건가. 국민 개개인의 총합이 국력, 나라의 힘이다. 기분 좋게 휴식을 취한 뒤 새로운 에너지와 아이디어로 무장하고 일터로 돌아오는 국민을 가진 나라는 강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이 재충전을 잘하면 국력은 당연히 커진다.

▼국력 재충전 시급하다▼

국민과 정부가 믿지 못하고, 끼리끼리 갈라져 사사건건 으르렁대는 나라의 국력이 커질 수는 없다. 국민소득 1만달러까지는 열심히 하면 어느 나라든 달성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2만달러에 도달하려면 실력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편 가르기로 날을 지새우면서 어떻게 2만달러 달성을 위한 실력을 키우겠다는 것인지 정부에 묻고 싶다.

평범한 국민은 큰 욕심이 없다. 이미 이 정권과 1년 6개월을 살아봤는데 새삼스레 큰 기대를 하겠는가. 휴가철이니 제발 휴가라도 맘 편히 가게 하라. 10년 뒤 20년 뒤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는 거창한 계획에 귀를 기울이기에는 하루하루가 너무 피곤하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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