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남찬순]총재님,부총재님

  • 입력 2002년 4월 15일 18시 32분


한나라당의 모습이 군색해 보인다. 뒤늦게 민주당 흉내를 내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노풍’에 맞설 ‘역풍’을 일으키려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대통령후보 경선이 초반 흥미를 끌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 경선은 좋게 보면 별탈없이 진행될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한 사람을 꾸미기 위한 경선이 아니냐는 의혹만 더하게 한다. 경선 주자들 사이에서도 특정 주자를 위한 지구당위원장들의 줄세우기가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불평이 나온다. 처음 경선을 실시한 인천에서는 공개 감시투표가 이뤄졌다는 ‘험악한 말’을 하는 주자도 있다.

그러면서도 경선 주자들은 모두 이를 악물고 싸우겠다는 의욕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불꽃이 튀어야 할 토론장에서 ‘총재님’ ‘부총재님’ 하면서 무슨 격론을 벌이겠다는 건가. 심리적으로 이미 당내 서열상의 상하 관계가 설정되어 있다면 아무리 공정한 경선의 판을 깔아 놓아도 한쪽은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경기가 된다. 내부적으로는 등수가 정해진 것 같은 경기에 관중이 무슨 흥미를 느끼겠는가.

▼´새장 속의 경선´▼

한나라당이 만든 경선 규칙을 보면 경선에 불이 붙기는 어렵게 되어 있다. 주자들은 당직자나 당원 접촉, 지구당 방문을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경선 당일 대회장에서 팸플릿을 돌리고 정견발표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돈선거 동원선거를 막고 깨끗한 경선을 치르기 위해서라고 한다. 당은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의 ‘대선 필패론’도 거론을 자제해 달라고 주문한다. 서로 언성을 높이다 보면 결국 당이 다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다 보니 주자들은 유세할 곳도 없고 할 수 있는 말도 없다. 서울에 앉아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점잖은 말’ ‘신사적인 말’만 하고 있다. 어느 주자의 얘기처럼 ‘새장 속 경선’이 되고 있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보기에는 “영, 아니올시다”이다.

당내 경선은 왜 하는가. 어느 특정 후보의 모양새를 갖춰 주기 위한 건가. 그런 목적이라면 이회창 후보에게 80% 가까운 표가 몰린 인천 경선은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그 성공은 한나라당 내 이회창 후보 측의 성공일 뿐이다. 당내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확보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유권자의 지지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당내 경선의 취지는 그 당의 대선주자로 나설 사람을 미리 국민에게 선보여 검증을 받자는 것이다. 검증을 해야 할 유권자가 외면하면 경선을 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민주당 경선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유권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좌파니 우파니 하고 이념론을 내세우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음모론’이니 ‘색깔론’이니 하고 맞받아치지만 그런 논쟁이 결코 소모적인 것만은 아니다. 주자에 대한 검증도 검증이지만 정치에 대한 관심을 일깨워 주고 있다.

한나라당의 경선은 원초적으로 민주당의 경선처럼 극적인 요소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이회창 후보는 4년간 당을 맡으며 다져놓은 조직이 있어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선두주자가 바뀔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 주자들 간의 논쟁 폭도 민주당보다 훨씬 좁다. 대부분이 과거 여당에서 한솥밥을 먹던 사람들이어서 서로간에 정책 논쟁을 해 보았자 뚜렷한 차이가 눈에 띄지 않는다. 이회창 후보의 공과를 따져보았자 그것은 당내의 일로 당원에게나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일반 유권자에게는 남의 일처럼 들린다.

▼´판´을 살려야 한다▼

한나라당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특정 후보의 대세를 기정사실화해 놓고 다른 주자들은 들러리나 서는 식으로 경선을 이끌어 가서는 절대로 ‘판’이 살지 않는다. 손님이 없는 ‘판’은 아무 소용이 없다. 당의 대선후보는 이회창 후보가 아닌 다른 사람도 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주자들이 치열한 검증 경쟁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주자들의 죽고 살자식 백병전을 권장하는 것이 아니다. 경선다운 경선을 하라는 얘기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판을 다시 정리해야 유권자의 관심을 끌 수 있다. ‘판’부터 살리는 것이 급하다.

이회창 후보 측도 달리 생각해야 한다. 당내의 기득권만 고수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회창 후보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경선에서 쉽게 일등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등을 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본선 경쟁력이 없으면 끝이다.

한나라당 안에서는 ‘노풍’이 결코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정말 ‘노풍’이 그럴까. 한나라당은 지금 선택해야 할 길이 어느 쪽인지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남찬순 논설위원 chans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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