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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9월 27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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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은 경제 전문지이지만 미국 사회의 중요한 현상에 대한 심층 기사로 유명하다. 몇 년 전 읽은 패스트푸드 음식점의 사회 문화적 의미에 대한 시리즈 기사는 학술 논문 못지않은 통찰력과 자료를 포함하고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수준 높은 사설과 깊이 있는 기사로 지식인들이 즐겨 읽는 신문이다. 정치적으로 중산층을 이끌어간다고 할 수 있다. 요일을 달리해서 기획되는 과학이나 학술면의 기사는 독자들에게 큰 지적 자극을 제공한다.
한국의 신문들은 대부분 USA투데이를 모델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시각적 효과를 높이는 데에 신경을 쓰고, 내용의 깊이는 등한시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지만, 화려한 포장보다는 알찬 내용이 아쉽다.
속이 꽉 찬 기사로는 23일 A8면에 실린 지방자치단체의 외자 유치에 관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열병처럼 불었던 지자체들의 외자 유치 바람의 문제점을 다양한 각도에서 깊이 있게 파헤쳤다. 외자 유치 과정에서 나타난 전문성의 부재, 재정적 낭비, 지역주민들의 불만, 환경문제 등을 제대로 짚어낸 것이다.
반면 실망스러운 기사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미국의 9·11테러 1주년을 맞아 지면을 메운 기사들은 대부분 피상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면은 많이 차지했지만, 이번 테러의 사회적 의미를 깊이 다룬 기사는 보기 힘들었다. 또한 사건을 지나치게 미국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11일자 A10면, 12일자 A1, A3, A9면 등에 게재된 기사 제목 사진 등은 미국인들의 아픔과 애국주의만 부각시켰다. 9·11테러가 발생하게 된 배경과 맥락을 보다 차분하게 검토하고, 미국의 군사 외교정책의 방향과 문제점, 아프가니스탄과 중동의 시각 등을 심층적으로 다뤘어야 했다.
24일 A29면의 사립대학교 등록금 의존율에 관한 기사를 관심 있게 읽었다. 교육부의 자료에 따르면 대학들이 예산의 61.8%를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고, 재단 전입금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 교육의 질이 국가의 미래와 직결되고 등록금이 학부모들의 큰 관심사라는 점에서 보면, 이 기사는 너무 작게 다루어졌다. 대학별로 등록금과 전입금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대학간 차이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원인은 무엇인지 등 많은 궁금증에 전혀 답을 주지 않았다.
가벼움과 빠름을 좇는 세태 속에서 조금 무겁고 느린, 그래서 깊이를 갖춘 신문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동아일보가 그런 신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철규 고려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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