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칼럼]다산 정약용의 근검정신을 되새기며

  • 입력 1998년 4월 19일 21시 16분


남도에 내려간 김에 강진 만덕산 기슭에 있는 다산초당(茶山草堂)에 들렀다. 나는 지금까지 이곳을 열번도 더 넘게 찾았다. 세상일이 답답할 때면 문득 다산선생 같은 이 땅의 옛 어른이 그리워진다. 꿋꿋한 기상으로 시대의 어둠을 헤쳐나간 그 자취가 그립기 때문이다.

아랫마을 귤동의 매화는 벌써 져서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백련사 동백숲의 동백꽃은 낙화로 처연히 땅을 덮고 있었다. 왕조시절 다산이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했다는 사실이 나그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 옛 선현의 기상 그리워 ▼

다산 정약용선생은 18년의 유배생활 중 이곳에서 10여년을 외롭게 지내면서 5백여권이나 되는 불후의 저술들을 남기었다. 초당을 중심으로 동암(東庵)과 서암(西庵)이 있는데, 동암에는 선생이 기거하고 서암에는 배우는 제자들이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2백년 전에는 구강포 앞바다가 훤히 내다보였을 듯 싶은데 지금은 삼나무와 잡목이 울창하여 앞을 가리고 있다.

이곳 동암에서 두 아들에게 띄워 보낸 ‘유배지의 편지’를 이번에 가지고 가서 그곳 마루에 걸터앉아 읽은 감회는 뭐라 말로 형용하기 어려웠다. 인도의 불교유적지를 순례하면서 불타 석가모니가 기원정사와 죽림정사에서 설법했던 그 경전을 그 현장에 가지고 가서 독송했을 때의 절절한 그런 감흥이었다.

아버지는 유배생활 10년째 되는 해 가을에 두 아들에게 이런 사연을 띄운다.

‘나는 논밭을 너희들에게 남겨 줄 만한 벼슬을 못했으니 오직 두 글자의 신비로운 부적을 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이것을 소홀히 여기지 말아라.’

이와 같이 당부하면서, 한 글자는 ‘근(勤)’이고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부지런함과 검소함, 이 두 글자는 좋은 논밭이나 기름진 토지보다 나은 것이니 평생을 두고 필요한 곳에 쓴다 할지라도 다 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부지런함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며, 아침에 할 일을 저녁 때까지 미루지 말라. 맑은 날에 해야 할 일을 비오는 날까지 끌지 말며, 비오는 날에 해야 할 일을 날이 갤 때까지 늦추어서는 안된다. 집안 식구들이 한 사람도 놀고 먹는 사람이 없게 하고, 한순간도 게으름이 없는 것을 부지런함이라 한다.

또 검소함이란 무엇인가. 한 벌의 옷을 만들 때마다 이 옷을 먼 훗날까지 입을 수 있는지 헤아려 보라. 가는 베로 만들면 머지않아 해어지고 말테니 질박한 천으로 만들어 입으라. 음식도 목숨을 이어가면 그것으로 족한 줄 알거라. 맛있고 기름진 음식을 탐하면 결국 변소에 가서 대변보는 일에 정력을 소모할 뿐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당장의 어려운 생활조건을 극복하는 일시적인 방편이 아니라, 여유있는 가정일지라도 집안을 다스리고 몸을 바르게 하는 항구적인 생활 규범이다. 그러니 가슴깊이 새겨두라고 거듭 당부한다.

실학자 성호 이익(星湖 李瀷)은 몹시 가난하여 식구는 많은데 가을걷이가 겨우 열두 섬뿐이었다. 그는 이것을 12등분하여 그달치 식량이 떨어져가면 죽을 끓이도록 하고 새달 초하루가 되어야 비로소 창고 속의 곡식을 꺼내오도록 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다음달 양식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 게으름과 시치 버려야 ▼

우리 옛어른들은 생활고를 이와같은 정신으로 이겨냈다. 하늘은 게으른 것을 싫어하므로 게으른 사람에게는 복을 내리지 않는다. 하늘은 또 사치스러운 것을 싫어하므로 사치하는 자에게는 도움을 주지 않는다. 게으름과 사치는 버려야 할 악덕이고, 부지런함과 검소함은 익혀야 할 미덕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나라 전체가 온통 국제통화기금의 시퍼런 칼날 위에 서 있다. 부지런하고 검소하게 살면서 하루 빨리 위태롭고 굴욕스러운 칼날 위에서 벗어나야 한다.

법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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