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구 칼럼]사면초가 제2건국위

  • 입력 1998년 12월 4일 19시 11분


‘제2의 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일로다. 출범 초부터 시민단체 네트워크 시비로 시끄럽더니 이번에는 정부개혁 등에 깊숙이 관여하려는 듯한 문건이 보도되면서 대통령자문기관이라는 본연의 성격을 벗어나 초법적 권력기관으로 변질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제2건국’운동의 처음 착상과 시작은 순수했다고 믿는다. 어떤 정치적 계산이 숨겨져 있는 것으로는 보고 싶지 않다. ‘제2의 건국’이라는 용어부터가 과거부정적이 아니냐는 일부 비판도 없지 않았으나 ‘제2의 창업’ ‘제2의 창간’이라는 구호들도 있고 보면 ‘제2의 도약’ 운동이라는 맥락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 자민련마저 이의 제기

6·25 이후 최대 국난이라는 경제위기 속에 국가경영의 책임을 맡게 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으로서는 어떻게 하든 기본이 바로 선 나라를 한번 만들어 보자, 정부와 민간이 하나가 되어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는 결연한 각오와 다짐으로 국력을 결집해 보자…, 이런 충정에서 이 운동을 제창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왜 이 운동을 둘러싼 잡음과 시비가 끊이질 않는가. 총력저지에 나선 야당은 물론이고 급기야 공동여당인 자민련까지도 추진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몰린 형국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의욕과 구상만 앞섰을 뿐 구체적 실천 프로그램 없이 일부터 크게 벌였다는 데 문제가 있다. 출범 석달 뒤 7대 국정과제에 대한 21개 실천 ‘기획과제’를 발표했지만 그것도 지극히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범주를 넘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일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성격과 역할 자체가 불분명하고 이는 곧 불투명으로 이어졌다. 제2건국위의 추진위원들조차 무얼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면서도 기구와 인원은 방대하다. 각계각층을 망라하여 4백28명으로 구성된 본회의, 58명의 상임위, 29명의 기획단이 중앙에 포진하고 있고 중앙부처마다 추진반이 구성돼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도 중앙과 비슷한 기구가 설치될 예정이어서 조직이 완료되면 전국적으로 위원만 1만명이 넘는 매머드 조직이 될 전망이라고 한다. 누가 봐도 대통령령으로 설치되는 자문기구에 걸맞은 성격의 조직이라고 보기 어렵다.

▼ 순수성 훼손 인정해야

형세가 이렇고 보면 야당이 의혹의 눈초리로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권재창출을 겨냥한 신당구축과 그에 따른 기반조성 작업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도 변명하기가 쉽지 않게 되어 있다. 곳에 따라서는 만년여당 취향의 지역인사들이 이 기구로 흡수되는 철새현상이 잇따르고 있어 야당의 위기감은 더욱 큰 듯하다. 벌써부터 완장부대들이 설치면서 홍위병 보듯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고 한다.

경위야 어떻든 이 시점에서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 운동의 순수성이 심각하게 의심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순수성을 강조해도 먹혀들어갈 단계는 이미 지난 것 같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돼버렸다. 그게 이 운동의 현주소다. 안타까울지 모르지만 이 점을 바로 보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당초 목적과 취지가 아무리 좋았다 해도 전개과정의 실제상황이 이 모양이라면 그대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점도 인정을 해야 한다. 모든 종류의 국민운동이 다 그렇지만 이 운동 역시 국민적 동참, 자발적 참여 없이는 성공을 기약하기 어렵다.

▼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김대통령은 “정치적 의도는 추호도 없다”고 말했다.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면 이 운동은 실패하고 말 것이라고도 했다. 그것이 진심이라면, 또 누가 뭐라든 이 운동을 기필코 성사시키겠다는 의지에 변함이 없다면 새로운 선택과 결단이 필요하다. 추진방식에 잘못된 대목을 과감히 잘라내는 것이다. 관(官)도 정치도 가급적 손을 떼고 지방조직도 없애거나 단순화시켜 순수 민간운동으로 재출발하는 문제를 원점에서 심각하게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아예 그만두면 몰라도 현재의 구도 그대로 무리하게 밀고나간다면 부작용만 양산할 뿐이다. 국력의 결집보다 오히려 국론분열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새마을운동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시대적 여건이 맞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조직에 의해 동원되는 시대는 지났다. 이미지의 시대, 홍보의 시대다. 무엇보다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남중구(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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