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47년 미국의 소리, 러시아어 방송 시작

  • 입력 2007년 2월 17일 03시 00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뉴욕입니다.”

1947년 2월 17일. 미국의 소리(VOA·Voice of America) 방송이 러시아어 방송을 시작했다. 미국의 체제를 선전하는 대표적 ‘심리전 방송’ VOA가 소련으로 전파를 보내기 시작했다는 것은 곧 다가올 냉전을 알리는 서막을 의미했다.

얼마 뒤인 3월 해리 트루먼 미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전체주의를 퍼뜨리려는 침략으로부터 자유 정부를 지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동서 냉전을 공식화한 이 ‘트루먼독트린’은 곧이어 대소 봉쇄정책으로 구체화됐다.

날씨와 기술적 장애 탓에 소련에서의 방송 수신 상태는 좋지 않았다. 이 때문에 미국은 연안 경비정에 스튜디오와 중계설비를 설치해 지중해 해상에 배치했다. 이 최초의 이동 방송선은 나중에 그리스의 한 섬에 닻을 내리고 해상 중계기지가 됐다.

VOA가 방송을 시작한 것은 1942년 2월. 미국이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휘말린 지 불과 2개월 만이었다.

첫 방송은 독일어였고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영어 방송이 뒤를 이었다. 나치 독일의 점령 아래 있던 유럽과 북아프리카 동맹국 국민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선전 활동이 목적이었다. 소속도 전시정보국.

VOA는 처음부터 ‘진실(truth)’을 모토로 내걸었다. 독일어 첫 방송은 “뉴스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우리는 진실만을 전할 것”이라는 다짐으로 시작했다.

이런 방침 탓인지 프로그램은 매우 무미건조했다. 간단한 뉴스 요약과 미국 정치체제에 대한 설명, 새로운 과학적 성과가 주 내용이었다. 청취자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프로그램은 미국 음악, 특히 재즈 코너였다.

한국어 방송은 1942년 8월 시작됐다. 그해 12월 말 조선총독부는 외국 단파방송 청취 금지령을 어기고 몰래 VOA를 청취하던 방송국 직원 등 수백 명을 체포해 75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른바 ‘단파방송 밀청사건’이었다.

오늘날 VOA는 53개 언어로 방송되며 11개 인공위성을 통해 전 세계에 전파를 보낸다. 영어와 알바니아어, 세르비아어 등 8개 언어는 TV방송도 동시에 내보내고 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군가였던 ‘양키 두들(Yankee Doodle)’을 송출신호로 방송을 시작한다.

현재 VOA 한국어 방송의 타깃은 북한 주민들이다. 북한 당국의 엄격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일부 주민들은 조선중앙방송에만 주파수를 고정하도록 땜질한 납을 떼어낸 뒤 VOA를 듣는다고 탈북자들은 전한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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