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00년 美백악관 개관

  • 입력 2004년 10월 31일 18시 11분


미국 대통령 관저인 백악관(White House)의 첫 주인은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아니었다. 워싱턴 대통령은 1799년 타계하는 바람에 1800년 11월 1일 거행된 백악관 개관식을 보지 못했다.

2대 대통령인 존 애덤스 대통령이 11월 2일 백악관에서의 둘째 밤을 보내면서 부인 애비게일 애덤스에게 쓴 편지에는 이런 기도가 들어 있다. “이 집과 앞으로 여기에 살 모든 사람에게 최고의 축복을 내려주소서.”

애덤스 대통령의 기도대로 백악관에 축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현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포함한 역대 미국 대통령은 모두 42명. 이 중 임기 중 숨지거나, 암살되거나, 사임한 백악관 주인은 9명(21.4%)이나 된다.

1973년 스피로 에그뉴 부통령의 사임으로 후임에 지명된 제럴드 포드는 1974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나면서 대통령직도 승계했다. 포드 대통령은 부통령으로 넬슨 록펠러를 지명했다. ‘선거로 선출되지 않은 정부통령’의 백악관 입성은 처음이었다.

백악관은 한국의 청와대에도 많은 영향을 줬다. 1960년 제2공화국 윤보선(尹潽善) 대통령은 관저의 이름을 ‘경무대’에서 청와대(Blue House)로 바꿨다. 이승만(李承晩) 전 대통령의 독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경무대란 이름에 담겨 있었기 때문.

참여정부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를 확대하고, 개방형 브리핑제를 도입한 것도 백악관 제도에서 본뜬 것이다.

1월 14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

열린우리당 인사들과의 잇단 오·만찬이 ‘식사정치’라는 비판에 대해 노 대통령은 미국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의 예를 들어 반박했다. 잭슨 대통령은 식당에서 자주 각료들과 국정을 논의해 그의 내각은 ‘키친 캐비닛((Kitchen Cabinet)’으로 불렸다.

잭슨 대통령의 또 다른 일화.

어느 날 그는 한 상이군인이 가족 부양을 위해 우체국장 자리를 원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상이군인은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인물. 잭슨 대통령의 반응은 이랬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다리를 잃었으니 나에게 투표한 것이나 다름없다.”

청와대가 백악관의 이런 민주 전통과 포용력까지 베껴 오지는 못한 듯하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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