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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0월 13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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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비단 영토 분쟁만이 아니다. 목판 인쇄술의 종주국 자리를 놓고 세 나라가 벌이는 자존심 대결도 팽팽하다. 그 논쟁의 중심에는 한국의 국보 제126호 ‘무구정광대다라니경’(무구정경)이 있다.
1966년 10월 14일 불국사 석가탑을 보수하던 중 2층 탑신(탑의 몸통 부분)에서 비단 보자기에 싸인 물건이 발견됐다. 열어 보니 길이 6m가 넘는 두루마리 종이뭉치. 1200여년 동안 잠들어 있던 통일신라시대의 목판 인쇄본 무구정경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국내 전문가들이 추정한 무구정경 제작 연대는 700년대 초반에서 중반 사이. 초반론자들은 당나라 측천무후 집권기간(690∼705년)에만 주로 통용되고 그 뒤 자취를 감춘 한자들이 무구정경 글 속에 들어 있는 점을 지적했다. 중반론자들은 대략 이때부터 신라에서 경문을 탑에 넣어 공양하는 풍습이 시작된 점을 강조했다. 석가탑이 착공된 751년 이전에 무구정경이 제작됐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무구정경의 출현에 일본과 중국 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그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본(백만탑다라니경·770년) 보유국이던 일본은 “석가탑이 완공된 8세기 후반까지를 제작 추정 시기로 잡아야 한다”고 고집했다.
자신들의 4대 발명품 중 하나로 인쇄술을 꼽아 온 중국의 반발은 더욱 거셌다. 중국 전문가들은 “702년 당나라 뤄양(洛陽)에서 제작된 뒤 신라로 전해진 것”이라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1990년대 후반 무구정경에 사용된 닥종이와 필체를 연구한 결과 한국이 세계 최고(最古) 목판인쇄본 보유국이라는 추가 증거가 속속 발견됐다.
그러나 아직 해외학계는 중국과 일본측 주장에 더 힘을 실어 주고 있다. 문화유산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작업에서 중국과 일본은 한국에 몇 걸음씩 앞서 있다.
무구정경과 비슷한 처지의 한국 인쇄물이 또 하나 있다. 직지심경 역시 독일 구텐베르크 성경에 가려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대접을 제대로 못 받고 있다. 인쇄술 종주국의 자부심을 찾을 날은 언제일까.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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