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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7월 21일 19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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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에 로멜이 있었다면 연합군엔 패튼이 있었다.
그는 장군이라기보다는 전사(戰士)였다. 거친 야수였다. 장갑차에 탄 그는 로마시대 전차를 탄 전사의 모습 그대로다.
그는 언제나 선봉에 섰다. 그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도 최전선에 그가 있었다.
대담한 발상과 거침없는 전진, 그리고 전광석화와 같은 기동력은 독일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패튼의 군대’는 이름만으로도 위협적이었다.
‘사막의 여우’를 사막에서 몰아낸 ‘북아프리카 작전’(1942년)과 ‘시칠리아 진격’(1943년) 그리고 노르망디 상륙작전(1944년)은 그의 무용담으로 넘친다.
주력인 영국의 몽고메리 장군을 지원하는 게 그의 임무였으나 패튼은 자주 독자적인 공격명령을 내려 심기를 거슬렸다.
1943년 7월 시칠리아에서는 몽고메리와 치열한 선두경쟁 끝에 열이틀 만에 수도 팔레르모를 함락시킨다.
신중하다 못해 “몸을 사린다”는 말을 들었던 몽고메리. 그에게 패튼은 ‘불안한’ 아군(我軍)이었다.
패튼은 독불장군이었다. 다혈질이었다. 오죽하면 부하들이 ‘흉악한 늙은이(Old Blood-and Guts)’라고 불렀을까.
1943년 8월 한 야전병원에서 ‘전쟁 노이로제’에 걸린 병사에게 “겁쟁이는 필요없다”며 뺨을 후려쳤다. 구타사건으로 그는 한동안 면직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앞두고 절대 보안이 강조됐으나 그는 출정식을 벌이고 연설을 했다.
그는 지휘관에 대해 “유능하고 말이 없으면 이긴다. 무능해도 말이 없으면 지지는 않는다”라고 강조했으나 그 자신의 ‘입’은 어쩌지 못했다.
전쟁 영웅의 죽음은 허무하다.
1945년 12월 타고 있던 승용차가 군용트럭과 충돌해 목뼈가 부러지고 하반신이 마비되는 중상을 입었다. 그는 숨을 놓으며 탄식했다. “군인다운 죽음은 이게 아닌데….”
모든 전쟁은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그러나 이 ‘전신(戰神)’에게 모든 평화는 단지 전쟁을 기다리는 시간에 불과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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