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0년뒤 뭘로 먹고사나 5]政經 개혁-相生의 날개달자

  • 입력 2002년 4월 4일 18시 05분


《선거철이 다가오면 재계 인사들의 해외 출장이 부쩍 잦아진다. 외부엔 ‘해외시장 점검차’ 또는 ‘합작사업 타진차’ 등을 출장 목적으로 내세운다. 한 번 나가면 두세 달씩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총알(선거자금)’을 지원해달라는 정치인들의 요청을 피하기 위해 잠시 떠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내에 있으면 갖은 연줄을 통해 접근해 오기 때문에 아예 해외로 몸을 피하는 것이다. ‘큰 장사꾼’으로 불리는 김정태(金正泰) 국민은행장은 연봉 6억원을 받는다. 그러나 이것저것 은행장 체면 때문에 돈을 내다보면 “남는 게 별로 없다”고 한다. 연말에 집중되는 정치헌금 요구에 “1인당 후원금을 5만∼10만원가량 냈는 데도 쌓이니 꽤 되더라”고 말했다. 한국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경제 외적인 시스템이 정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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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유착은 이젠 그만〓새 정부가 들어서면 으레 대기업 개혁의 기치를 내걸곤 한다. 현 정부도 98년 중반 이런 개혁을 외쳤다. 대그룹에서 사장을 지냈던 S씨는 “대기업 때리기만큼 정치권 입맛에 맞는 ‘개혁메뉴’가 없기 때문”이라며 “기업들이 정치권 동태에 민감한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단언했다.

한국 대기업의 성장과정에서 정경유착이 이뤄진 경우가 적지 않았다. 기업은 권력자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대가로 이권을 얻었다. 권력자는 고분고분 말을 잘 듣지 않는 기업을 ‘괘씸죄’로 문을 닫게 만들기도 했다.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벽’을 넘지 못하고 게걸음을 하는 것은 이처럼 경제 외적인 사회시스템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탓이 크다. 이 가운데서도 경제에 군림하거나 기생하는 정치시스템의 폐해가 가장 심각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해 5월 정치자금이 투명해지고 민주적 정당제도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300쪽 분량의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을 냈다. 법인세의 1%(1700억원 정도)를 정치자금으로 쓰고 정치자금을 주고받을 때 신용카드를 사용하자는 게 골자였지만 정치권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반면 미국은 지난달 30여년 만의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스스로 검은 돈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김현태(金炫泰) 선관위 정당국장은 “선진국이 되려면 고비용 정치구조를 청산하고 정치자금 흐름도 투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을 ‘봉’으로 생각하는 유권자들의 의식도 문제다.

총선이 있었던 2000년 정당 명부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611만978명이나 됐지만 이 가운데 당비를 낸 사람은 0.42%인 2만5383명에 불과했다.

‘무자격’ 당원이 중앙의 ‘실탄지원’만 쳐다보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고질적인 보스정치와 부정부패가 근절되지 않는 것이다.

▽국가운영 시스템에도 메스를〓정당에서 태동한 계보식 보스정치는 국정에도 이어진다. 의원 공천권과 장관직으로 충성 경쟁을 유도하고 검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등 핵심 권력기관에 ‘자기 사람’을 심어 막강한 권력을 쌓는 식이다. 정당에서는 총재가, 부처에서는 장관이 각각 제왕적 권력을 갖는다. 이런 통치체제는 권력기관 내 원활한 의사소통을 막고 국정 운용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현 정부는 98, 99년 두 차례 정부조직을 뜯어고치면서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내걸었다. 2차 개편 때는 조직진단을 맡은 국내외 컨설팅기관에 50억원 이상 지불했다.

그러나 당시 정부조직개혁을 지휘했던 이계식(李啓植) 전 정부개혁실장은 “누워 침뱉는 격”이라며 그 성과에 입을 다문다. 전문가들이 만든 개편안이 정부로 넘어가기만 하면 조직을 방어하려는 부처이기주의에 짓눌려 ‘누더기’로 변했기 때문이다.

여러 민간 전문가들이 줄기차게 요구해 온 △산업자원부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 등 기술산업 관련 정부 부처 통합 △보건복지부와 노동부 통합 등 핵심과제는 ‘영원한’ 중장기과제로 남아 있다. 교육개혁 등 국가자원을 쏟아야 할 사안에 대해 부처 사이의 건강한 토론은 사라지고 “왜 우리 영역을 넘보느냐”는 이기주의가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내년 출범할 새 정부마저 정부조직 및 공무원 인사제도의 대대적인 개편에 실패한다면 정부 부문은 영원한 ‘3류’로 남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잠자는 人力’ 노년층 활용대책 마련해야▼

▽새 인력 활용 시스템 필요〓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국가비전 2011 보고서’에서 “한국사회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속하게 노령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9년이면 65세 이상 노년층이 인구의 14%를 넘어선다.

고령화는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을 줄여 성장활력을 시들게 한다. 10명의 청장년이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지만 17년 뒤엔 5명이 1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것이다. 저축 투자가 줄고 나라살림에도 주름을 준다.

그러나 평균 수명이 76세를 넘어선 지금도 55∼65세의 정년제를 고수하고 있다. 올 1월 현재 65세 이상 인구는 414만명. 이 중 생산활동을 하는 사람은 25.6%인 106만명에 불과하다. 체력과 연륜, 즉 생산성을 갖춘 노인들이 사장(死藏)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두 차례의 ‘골드플랜’을 발표하며 이 문제의 해결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한국에는 보건복지부에 노인복지과가 있을 뿐이다. 노인실업을 ‘개인문제’로 본 탓이다.

차흥봉(車興奉) 전 보건복지부 장관(한림대 교수)은 “인구학적으로 연소인구가 줄어들면 노인고용을 활용하는 것은 국가적 생존과제”라며 “정부가 대대적인 ‘노인 일거리 찾아주기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 인력 활용에도 눈길을 돌려야 한다. 작년에 매킨지 컨설팅사가 발표한 ‘우먼 코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여성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기 어려운 요인으로 육아부담(31%), 사회적 편견 및 차별(28%), 불평등한 근로여건(13%), 가사분담(11%) 등을 들었다. 이런 문제점을 없애는 방향으로 인력정책이 시행되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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