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홀대 아니라는 시진핑 상석 의전, 다른 나라는 어떻게 대했나 따져봤더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일 11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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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전 개혁 차원에서 그렇게 자리 배치를 한 것이지 한국을 의전에서 홀대하는 게 아니다. 다른 나라도 똑같이 배치했다.”

중국의 외교 당국자가 최근 한 말이라고 합니다. 3월 12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방중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상석(上席)에 앉아 정 실장을 하대하는 듯한 자리 배치로 논란이 된 데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사진1> 참조.

한국 정부도 얼마 전 “중국 측으로부터 새롭게 정착되고 있는 관행이라는 답을 들었다”며 “우리는 (특사 방북 결과를 설명하는) 중대한 문제에 대해 형식적 측면보다는 내실에 관심을 가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중국 측은 “(정 실장 방중 때와 같은 자리 배치) 사례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하네요. 중국은 당시 정 실장을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라고 불렀습니다.

특사는 한 국가의 정상이 자신의 메시지를 상대국 정상에게 전하기 위해 특별히 파견한 사절입니다. 대통령의 친서나 구두 메시지를 상대국에 전하기 때문에 대통령을 대신하는 임무를 띠죠.

<사진1> 출처 동아DB
<사진1> 출처 동아DB


이번 자리 배치 하대 논란은 지난해 5월 19일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문 대통령의 특사로 시 주석을 만났을 때도 있었습니다. 이 전 총리는 사드 문제를 잘 풀어보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친서를 시 주석에게 전달했지만 상석에 앉은 시 주석에게 보고하는 듯한 자리 배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진2 참조>

<사진2> 동아DB
<사진2> 동아DB


중국이 이런 자리 배치가 “새로운 관행”이고 “다른 나라도 똑같다”고 말했다니 다른 나라는 어떤지 확인해볼까요?

우선 미국을 찾아봤습니다. 시 주석은 지난해 9월 30일 인민대회당에서 지금은 물러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을 만납니다. <사진3 참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던 시 주석은 틸러슨 당시 장관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이 멋질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시 주석과 틸러슨 장관은 나란히 앉았습니다. 세계 1위 강대국의 외교 수장에게 아랫자리를 내주기는 어려웠을 듯합니다.

<사진3> 출처 가디언
<사진3> 출처 가디언


연방정부 고위 관료뿐 아니라 주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6월 6일 방중한 제리 브라운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시 주석과 나란히 앉았습니다. <사진4> 참조

시 주석은 브라운 주지사에게 “캘리포니아 주가 중미 교류와 협력을 증징하는 데 큰 역할을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사진4> 출처 신화통신
<사진4> 출처 신화통신


그럼 중국과 사이가 썩 좋지 않은 일본은 어떨까요. 지난해 5월 16일 중국에서 열린 일대일로 정상포럼에 참석한 일본 집권당 자민당의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이 시 주석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사진5> 참조.

나란히 앉은 사진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자리에 앉기 전 인사 하며 악수하는 이 장면 오른쪽의 의자를 보면 나란히 앉을 때 자리 배치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 주석은 당시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양측이 역사를 거울 삼아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진5> 출처 신화통신
<사진5> 출처 신화통신



시 주석은 니카이 간사장 일행과 회의할 때도 마주보고 진행합니다. <사진6> 참조.

시 주석 양측에 양제츠 당시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왕이 외교부장이 앉아 있습니다. 시 주석이 정의용 실장을 만난 <사진1>에서는 양제츠, 왕이가 정 실장 일행과 마주보고 있고 시 주석은 회의를 주재하듯 상석에 앉아 있죠. 이에 대해 중국 측은 “간사장은 당의 수장이어서 그렇게 자리를 배치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간사장이 당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직책이기는 하지만 자민당 대표는 아베 신조 총리입니다.

<사진6> 출처 신화통신
<사진6> 출처 신화통신



신흥 대국이라 불리는 인도는 어떨까요. 중국 측이 “새롭게 정착되고 있는 관행”이라고 든 사례 가운데 하나가 인도 아짓 도발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해 7월 28일 브릭스(BRICs) 국가들의 외교안보 담당 고위 관료들과 함께 시 주석을 만날 때 모습이었습니다. <사진7> 참조.

<사진7> 출처 인디안 익스프레스
<사진7> 출처 인디안 익스프레스


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아짓 도발 보좌관입니다. 당시 중국과 인도는 국경 지역 분쟁으로 관계가 크게 악화됐던 시기입니다. 하지만 아짓 도발 보좌관은 러시아, 브라질, 남아프리카 등 브릭스 국가 외교안보 담당 관료들의 일원으로 시 주석을 만났습니다. 양국 간 회담 성격도 아니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파견한 특사 자격도 아니었습니다.

아짓 도발 보좌관이 2014년 9월 8일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특사로 시 주석을 방문했을 때 사진입니다. <사진8> 참조. 시 주석과 나란히 앉아 있군요.

<사진8> 출처 신화통신
<사진8> 출처 신화통신


좀 더 최근 사례를 보겠습니다. 베트남, 라오스 정상의 특사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는 어땠을까요. 지난해 10월 30일 베트남과 라오스 특사가 차례로 시 주석을 예방합니다. 시 주석이 지난해 10월 19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재선출된 것을 축하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먼저 황빙 꾸민 베트남 공산당 대외관계위원장입니다. <사진9> 참조.

<사진9> 출처 베트남뉴스
<사진9> 출처 베트남뉴스


다음은 순통 사야착 라오스 인민혁명당 대외관계위원장이 시 주석을 만나는 모습입니다. 자리에 앉기 전이지만 의자 배치를 보면 나란히 앉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사진10> 참조.

<사진10> 출처 비엔티안타임스
<사진10> 출처 비엔티안타임스



다른 사례도 보겠습니다. 지난해 11월 24일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을 만난 미얀마의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입니다. <사진11> 참조.

<사진11> 출처 신화통신
<사진11> 출처 신화통신



중국이 얘기했다는 “다른 나라도 똑같이 한다”는 “새로운 관행”은 과연 무엇일까요. 올해 4월 16일 시 주석은 인민대회당에서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회장을 접견합니다. 관영 중국중앙(CC)TV에 방영된 모습을 보니 시 주석이 상석에 앉아 있습니다. <사진12 참조>.

다보스포럼에 세계 각국의 주요 인사들이 많이 참석하기는 하지만 다보스포럼은 슈바프가 설립한 비영리재단입니다. 슈바프 회장은 경제학자입니다. ‘저명한 민간 인사’라고 봐야 할 듯합니다. 일국 정상이 파견한 특사와는 격이 다릅니다.

<사진12> 출처 CCTV 캡처
<사진12> 출처 CCTV 캡처


올해 4월 23일 시 주석은 인민대회당에서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 외무장관 이사회에 참석한 SCO 회원국 외무장관, 국방장관들을 각각 접견합니다. 이들을 접견할 때도 시 주석은 상석에 앉아 있습니다. <사진13, 14 참조>

하지만 이들 역시 SCO라는 국제조직 회의 회원국들 대표이지 양국 간 회담이나 정상의 특사는 아니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방중한 정의용 ‘특사’와 격이 같다고 볼 수 없습니다.

<사진13> 출처 신화통신
<사진13> 출처 신화통신


<사진14> 출처 신화통신
<사진14> 출처 신화통신


각국 사례로 볼 때 중국이 한국 대통령의 특사에게 유독 아랫자리 배치를 적용한 건 아닌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좀 씁쓸하죠? 특히 지난해 5월 이해찬 특사가 당한 수모는 사드 문제로 시 주석의 심기를 건드린 데 대한 보복성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올해 3월 정의용 실장의 방중 때 시 주석이 나란히 앉았다면 지난해 5월의 외교 결례를 스스로 인정하게 된다고 판단했던 걸까요. 한국은 중국이 말하는 이른바 ‘대국’은 아니지만 국력과 경제력이 세계 상위권인 국가입니다. 세계 2위의 강대국인 중국의 ‘대국다운’ 외교적 도량이 아쉽습니다.

중국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중국이 한국을 중국의 주권이 미치는 홍콩, 마카오 정도로 대하는 것 아니냐는 ‘억측’이 확산되는 걸 막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앞으로 시 주석이 다른 국가의 특사마저 상석에 앉아 대한다면 그 역시 상대국에 대한 예의라고 보기 어려울 듯합니다.

<사진15> 케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지난해 4월 11일 시 주석을 만나는 장면. 사진 출처 홍콩 HKFP
<사진15> 케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지난해 4월 11일 시 주석을 만나는 장면. 사진 출처 홍콩 HKFP

<사진16> 추이스안 마카오 행정장관이 지난해 12월 16일 시 주석을 만나는 장면. 사진 출처 마카오뉴스
<사진16> 추이스안 마카오 행정장관이 지난해 12월 16일 시 주석을 만나는 장면. 사진 출처 마카오뉴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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