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서 찾는 ‘안강 참기름’… 골목골목 40년 고소한 향기

노지현기자 입력 2015-09-01 03:00수정 2015-09-0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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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경제 살리는 내고장 전통시장]<1>경주 안강시장 《 동아일보는 오랫동안 지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온 전통시장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9월부터 매주 화, 목요일 자로 게재합니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전국 방방곡곡 전통시장의 모습에서 우리 이웃의 생생한 활기를 느끼시기 바랍니다. 》

“나 세 병만 줘요. 검은깨도 주고∼.”

5일장이 열린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시 안강읍 안강전통시장 내 영덕참기름집 앞. 경성자 씨(67·여)가 가게에 들어서며 큰 목소리로 주인에게 말을 건넸다. 참기름인지 들기름인지 묻지도 않았다. 눈빛만 봐도 서로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물건을 담았다.

15년 단골손님인 경 씨는 차로 20분가량 걸리는 포항에서 일부러 이 집까지 참기름을 사러 온다. 보통은 해산물이나 큰 장을 보러 안강에서 포항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참기름만큼은 예외다. 이날, 안강전통시장 내 참기름집 17곳에는 포항에서 찾아온 단골손님들로 북적였다. 대부분 거래한 지 15년 넘은 사람들이다. 시어머니가 단골로 다니던 집에 며느리가 대를 이어 사러 오기도 한다. “포항에는 맛있는 참기름집이 없느냐”는 질문에 손님들은 입을 모아 “고소함이 여기만 못하다”, “버무렸을 때 솔솔 나는 향이 안강참기름만 못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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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강전통시장이 역사적으로 형성된 시기는 192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 참기름집이 한두 개 생겼는데, 깨 재료가 좋아서 수집상들의 수요가 늘었다. 안강은 영양·청송·기계를 잇는 교통 요지인데 무거운 깨를 싣고 가려니 부피가 커서 불편한 점이 많았다. “아예 여기서 짜 가지고 가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참기름집이 많아진 것.

참기름집이 늘어나면서 긍정적인 경쟁도 일어났다. 손님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저마다 노하우를 쌓아 맛있는 참기름을 만들기 위해 수십 년간 노력해 왔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경력 40년의 ‘참기름 전문가’들이 흔하다. 신진참기름집, 대흥참기름집 주인 모두 40년 넘게 이 직종에 종사했다.

기계화가 됐다고는 하지만, 참기름을 짜는 데는 사람의 눈과 감각으로 결정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깨 볶는 ‘타이밍’과 적정 온도. 덜 볶으면 기름이 맑은 대신에 맛이 깊지 않다. 그래서 나물을 무치면 향이 없다. 반대로 너무 오래 볶으면 찌꺼기가 참기름 유리병 밑으로 가라앉는다. 안강참기름은 담은 유리병 밑바닥을 뒤집어 살펴봐도 가라앉은 물질이 없었다.

참기름을 먹다 보면 밑으로 가라앉는 검은 물질은 찌꺼기다. 반면 안강참기름은 찌꺼기를 미세한 망으로 다시 한 번 거르기 때문에 검은색 입자가 하나도 없었다. 미세하게 하얀색 입자가 아래로 가라앉고 있는 느낌이 들었는데, 식물성이어서 원액이 가라앉는 것이다. 김종희 씨(53)는 “이 부분을 가끔 도시 소비자들은 버리고 안 먹는데 실은 다 깨 성분”이라며 “참기름도 꼭 먹기 전에 위아래로 흔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안강 상인들이 추천한 참기름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는 문어숙회. 문어숙회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곳 사람들이 먹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문어를 먹기 좋게 잘라 잘게 썬 파프리카를 넣고 참기름·맛소금으로 버무린다. 파프리카의 아삭한 맛과 차가운 문어의 식감이 참기름 향과 조화를 이룬다.

안강시장 참기름의 맛과 향은 1970년대 이후 그대로지만, 상인들의 걱정은 깊었다. 1990년대부터 전국 전통시장이 그러하듯, 소비자들의 발길이 줄어들었다. 10년 전부터 단계적으로 캐노피와 비가림막을 설치하고, 공중화장실을 수리하는 등 눈비가 와도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을 현대화했다.

이런 노력에 힘이 실린 것은 올해 4월 중소기업청이 특성화시장 육성을 위해 공모한 ‘골목형 시장 사업’에 최종 선정되면서부터다. 올해 처음 실시되는 ‘골목형 시장’은 대형마트와는 다른 차별적인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1년간 최대 6억 원을 지원해 특화상품을 개발하게 된다. 경주 안강시장도 특화상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상인들은 공동으로 ‘안강참기름’이란 브랜드를 개발해 백화점에도 공급할 계획이다. 지금도 대기업 명절선물이나 사은품으로 전국의 단골손님들에게 참기름을 보내고 있긴 하지만, 공동브랜드를 만들 경우 일반 소비자들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안강시장 가는 길이 더욱 즐거워지는 방법이 있다. 경주의 전통과 유교문화를 느낄 수 있는 유적지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 △양동마을 △옥산서원 △용담정 △독락당이 있어 하루 코스 가족여행으로도 좋다.

경주=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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