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서자/인터뷰]삼원정공 산증인 양용식 상무

입력 1997-12-31 18:45수정 2009-09-26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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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초부터 ‘1초 아끼기’, ‘1% 줄이기’ 운동을 이끌어 오늘의 탄탄한 삼원을 일궈낸 양용식상무. 그는 “외국에 구걸하게 된 나라신세가 어처구니 없고 믿어지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어려서 집안이 기우는 바람에 그는 초등학교도 미처 졸업하지 못하고 공장에 나가야 했다. 겨우 열세살 때였다. 그로부터 38년. 오직 일밖에 모르고 땀만 흘린 세월이었다.74년 제대 몇시간 후에 삼원에 입사, 그날 오후에 장갑을 끼고 기계를 돌렸다. 그래서 붙은 ‘독종’이란 별명을 그는 훈장만큼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의 출근시간은 회사동료중 누구도 모른다. 가장 먼저 회사에 나오기 때문.삼원의 성공비결을 듣고싶다는 외부특강 요청이 들어오면 그는 강의시간을 오전 4시로 잡아 사람들을 ‘기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근무시간을 뺏길 수 없다는 원칙에서다. “10년만 더 일한 뒤에 세상 구경이나 하면서 소일하려고 했는데 국제통화기금(IMF) 때문에 그 꿈은 보류했습니다. 제 나이를 아예 31세로 낮췄어요. 청년기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더 열심히 뛸 각오입니다.” 새해를 맞아 그는 훨씬 더 젊어졌다. 〈이명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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