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게 이렇군요]안기부돈 1192억 '출처'공방…사건성격 바뀔수도

  • 입력 2001년 1월 14일 18시 38분


《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 사건을 둘러싼 여야 공방의 핵심은 96년 15대 총선 당시 신한국당에 지원된 1192억원의 출처이다. 검찰과 여권은 이 돈이 모두 95년 안기부 본예산과 예비비라고 주장하나, 한나라당은 예산이 아닌 정치자금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어느 쪽 이 맞는지에 따라 이번 사건의 성격이 판명되겠지만 사안은 복잡해졌고 이를 둘러싼 여야와 검찰, 그리고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간의 신경전도 갈수록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안기부 돈 출처에 대한 주장
검찰, 민주당안기부 예산으로 국고수표를 발행해 돈 세탁을 거쳐 신한국당에 지급
한나라당안기부 돈 일부와 구여권 정치자금이 섞인 것
YS측신한국당이 기업체 등으로부터 모은 정치자금

▼한나라 주장▼

▽‘안기부 예산 아니다’〓국회 정보위가 보관하고 있는 안기부 예산 및 결산자료에 따르면 95년 안기부 예산은 모두 4920억원이다. 이 중 본 예산은 1670억원이고 예비비는 3250억원.

지출내용을 보면 인건비와 기관운영비 등 경상비가 약 3000억원(약 61.0%)으로 가장 많다. 정보비 지부운영비와 교육 및 홍보비 등 사업비가 약 1600억원(약 32.5%)이고 보험료 연금보조비 등 국가부담금이 약 120억원(약 2.4%)이다.

따라서 지출내용에 나와 있는 4720억원은 사용처가 분명해 신한국당에 지원될 수 없는 돈이라는 게 한나라당 주장. 또한 나머지 200억원도 국회 정보위에 있는 안기부 예산 및 결산 서류를 보면 지출항목이 명확해 다른 용도로의 전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그러면서 은근히 ‘문제의 돈이 안기부 예산이 아니라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 측의 정치자금일 것’이라는 추측을 흘리고 있다. 검찰 수사의 최종 타깃을 YS쪽으로 돌려 돈을 받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면죄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은 14일 “검찰 말대로 안기부 예산 중 1192억원이 신한국당에 지원됐다면 안기부 운영이 마비됐을 것”이라며 “이 돈의 전부가 국고수표 발행분인지, 아니면 일부가 국고수표이고 나머지는 다른 방법을 통해 인출한 것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검찰-여 반박▼

▽‘안기부 예산 맞다’〓검찰과 민주당의 반박은 한마디로 ‘국회 정보위가 안기부 돈 씀씀이를 어떻게 아느냐’는 것. 국회나 감사원에 제대로 보고되지 않는 안기부예산 집행내용을 외부기관 자료를 토대로 추정하는 것은 애당초 접근 방식이 잘못됐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서류에는 인건비나 기관운영비 항목으로 잡혀 있는 돈도 실제로는 엉뚱한 분야에 사용돼왔다는 것. 특히 예비비는 예산책정 때부터 세부내용이 나와 있지 않아 어디에 얼마나 썼는지를 외부기관이 알 수 없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실제로 안기부는 매년 결산 때 남은 돈을 ‘0원’으로 신고한다. 예산 책정액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모두 지출했다는 뜻인데 이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예산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검찰은 또 신한국당에 들어간 돈이 안기부 예산이라는 사실은 계좌추적을 통해 확인된 것이어서 오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안기부가 국회에 ‘총선 자금으로 썼다’고 보고할 리가 있겠느냐”며 “김기섭(金己燮)전 안기부 운영차장도 조사에서 모두 안기부 예산이라고 인정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장▼

민주당 이해찬(李海瓚)최고위원은 안기부 청사를 서울 중구 남산동에서 현재의 서초구 내곡동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총선자금이 조성됐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안기부 청사 공사가 92년에 시작해 94년에 끝났으나 이최고위원이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있던 95년에도 서울시가 이전비용으로 190억원을 줬을 뿐만 아니라 96년과 97년에도 안기부 본예산에 수백억원씩 청사신축비용이 포함됐다는 것.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이와 달리 “신한국당에 들어 온 돈이 안기부 예산의 불용액이라는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안기부가 매년 예산 중 쓰고 남은 돈을 국고에 반납하지 않고 금리가 높은 금융기관에 예치하는데 96년 총선 때 이를 신한국당에 지원했다는 얘기였다.

한나라당의 다른 한 의원은 김영삼 전대통령의 92년 대선 잔여금이나 대선 승리 축하금일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YS의 정치자금을 안기부 예산에 포함시켜 관리해오다 15대 총선 때 썼다는 얘기다.

이렇게 화살이 YS쪽으로 쏠리자 YS측은 “힘을 합쳐 대처해도 부족할 판에 한나라당이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자초한다”고 흥분했다. 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의원은 “한나라당이 YS를 밀어 넣고 자신들은 빠지려고 한다”면서 “한나라당이 자살골을 넣고 있다”고 비난했다.

<송인수·윤영찬·신석호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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