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지도자에게 듣는다]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 입력 1999년 4월 22일 20시 05분


《풀릴 듯하던 정국 기류가 계속 결빙(結氷)상태다. 최대 현안인 정치개혁협상은 각 당의 정략적인 이해충돌에 휘말려 좀처럼 가닥이 잡히지 않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여야는 ‘고관 집 절도사건’과 ‘3·30’재 보선 부정선거 시비로 날을 보낸다. 이런 상황에서 정국타개책을 찾기 위해 여야지도자들의 연쇄 회견을 기획했다. 그 첫번째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얘기를 들어보았다.》

―정국에 다시 냉기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여야총재회담 당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3·30’재 보선이 공명선거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러나 실상은 부정 타락선거였습니다. 여권이 서상목(徐相穆)의원 체포동의안을 갑자기 표결에 부친 것도 여야대치상황을 빚은 한 요인이 됐다고 봅니다. 그러나 여야가 대화와 조정으로 정치를 풀어나가는 게 정도(正道)라고 생각합니다.”

―한나라당은 정치개혁협상에 앞서 권력구조문제가 선결돼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권력구조가 선결돼야 한다는 주장은 사리에 근거한 것입니다. 대통령제 아래서는 양당제가, 내각제에서는 다당제가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김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총리가 권력구조논의를 뒤로 미루고 선거구제 협상을 먼저 하자는 것은 권력구조에 맞는 제도를 만들어 놓고 밀어붙이겠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권력구조에 관한 결단을 미루기 때문에 결국 현 대통령의 임기말 개헌을 하고자 하는 장기집권음모가 깔린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 아닙니까.”

―권력구조문제가 선결되지 않으면 정치개혁협상에 응하지 않겠다는 얘기입니까.

“권력구조와 상관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협상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선거구제 같은 것은 권력구조가 선결되지 않으면 협상에 응할 의미가 없어요. 모든 것을 포괄협상식으로 추진하려 하면 협상이 마무리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선거구제에 대한 당론은 어떻게 정리하실 계획입니까.

“현 체제 하에서는 소선구제가 맞지만 권력구조가 바뀔 경우엔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재 여권이 내놓은 정당명부제는 지역 간 차등을 심화시키고 과거 유정회처럼 집권자나 1인 보스의 의사에 따라 세력집단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현실에 맞지 않다고 보는 겁니다.”

―정치개혁협상 등 현안 해결을 위해 총재회담을 가질 용의는 없습니까.

“정치개혁문제는 총재회담보다 당 차원에서 절충해 풀어가야 한다고 봐요. 그러나 다른 정국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대통령과 만날 용의가 있습니다.”

―김대통령이 말한 공동여당의 연합공천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입니까.

“정당이 자당 후보를 공천해야지 남의 당 후보를 지원한다는 것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될 뿐만 아니라 지역구도를 계속 끌고 가겠다는 발상에 지나지 않아요. 연합공천이야말로 지역감정론의 극치입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연합공천을 저지해 나갈 것입니다.”

―제2창당의 각오로 당을 변모시키겠다고 선언하셨는데….

“2000년대에 들어서도 지금같은 정치행태가 이어지면 안된다는 점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봐요. 새정치에 대한 가치관과 관념이 정립돼야 하고 새로운 세력화로 정당의 틀이 바뀌어야 합니다.

내년 총선은 새로운 천년을 맞는 첫선거이니만큼 획기적으로 변한 모습으로 임하게 될 겁니다. 특히 새인물의 영입은 ‘열린 정당’으로서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갈 생각이에요.”

―정치학자 중에는 한나라당이 21세기 정당의 새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3김시대’의 관점으로 보면 돈도 없고 여당 프리미엄도 없어져 곧 풍비박산할 것 같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아요. 명실상부하게 민주적으로 대의원들이 총재를 직접 뽑은 것은 한국정당사의 새로운 실험이며 새정당의 출현을 의미합니다. 계파 간 이견도 정당에서는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 아닙니까.

한나라당의 결속을 유지하는 힘은 이런 민주적인 힘입니다. 대부분 당원들은 재집권해서 책임정당의 자존심을 되찾아야 한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이동관기자〉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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