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는 지난달 19일과 20일, 각각 삼성전자 구미·온양공장과 기흥·화성·평택공장의 작업환경보고서를 30일 유예기간이 끝난 뒤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영업비밀로 볼 만한 정보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반도체전문위는 “2009년 이후 작성된 작업환경보고서는 30나노 이하급 D램 조립·검사기술, 낸드플래시 설계·공정·소자기술 및 3차원 적층형성기술 등 6개의 국가 핵심 기술을 포함하고 있다”고 판정했다. 당연한 판정이다. 작업환경보고서에는 500여 개 공정의 장비 종류와 배치 등이 상세히 기술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997억 달러를 수출해 전체 수출의 17.4%를 차지한 반도체는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자, 그렇지 않아도 경쟁력을 잃어가는 우리 산업의 생명줄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 점유율 1, 2위를 차지하는 기반은 독보적인 기술력에 있다. 외국 경쟁업체들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 반도체 기술을 빼가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터에 보고서를 공개하라는 것은 경제 국익을 자해(自害)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전문위의 판단을 법원과 행정심판위에 참고자료로 제출할 계획이다. 민관 전문가로 구성된 전문위의 판단은 그 자체로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당장 고용부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용부가 한국의 정부 부처라면 국가 핵심 산업 기술을 보호하면서 근로자의 건강권을 챙길 수 있는 방안을 고심했어야 옳다. 전문가의 자문, 관련 부처와의 조율도 없이 덜컥 핵심 기술이 담긴 보고서 공개부터 결정한 고용부의 행태는 정부가 나서서 외국 기업의 산업 스파이 노릇을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