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동네 수의사입니다①

부산의 한 동물병원 페이스북 계정에 지난 28일 올라온 '좋은 동물병원, 좋은 보호자'라는 제목의 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 "저는 평범한 동네 수의사입니다"로 시작하는 이글은 조영일
조앤박동물병원
원장이 썼다.

조 원장은 수의사이자 보호자로서 동물병원에 대한 불신과 오해를 풀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장문의 글을 올렸다. 칼럼형식으로 3회에 걸쳐 가감없이 소개한다.

< 좋은 동물병원, 좋은 보호자 >

저는 평범한 동네 수의사입니다.

요즈음 뉴스나 SNS의 여러 글을 보면서 동물병원에 대한 불신과 오해를 풀고싶은 마음에 오늘 또 보호자의 마음아픈 사연을 보고 이렇게 글을 적어봅니다.

저도 강아지 고양이를 키우고 있고 그 아이들에게 치료도 수술도 하는 수의사이자 보호자로서 드리고 싶은 이야기 입니다.

1. 치료비용과 양심은 무관합니다.

해마다 나오는 뉴스거리 중의 하나인데, 방송기자가 뒷다리를 절뚝거리는 개를 데리고 여러 곳의 동물병원을 다니며 ‘슬개골 탈구’라는 질병의 수술견적을 비교합니다.

진통제를 조금 먹고 보라는 수의사부터 수술을 해야한다는 수의사까지, 그리고 5만원부터 200만원까지의 치료비용이 나와 40배나 진료비가 차이난다고 인포그램까지 동원해가며 자극적 보도를 합니다.

보호자들은 그런 방송을 보며 불신과 함께 비싼 병원의 수의사는 비양심적이라는 마녀사냥식 병원찾기도 시작됩니다.

이렇게 치료비와 양심이 반비례하는 분위기 속에서 심지어는 환자에게 솔직해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건 저만 겪는 문제도 아니며, 소신있게 진료하는 수의사라면 누구나 겪는 일입니다.

예를 들었던, 슬개골 탈구는 텍스트나 논문에서는 초기의 수술적 교정이 진행의 예방, 낮은 재발율, 예후에도 좋다는 것을 수의사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싼 수술을 권유하는 돈밝히는 나쁜 수의사로 보일까봐 임시방편으로 진통제를 처방하는 등 여러 고민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수술방법도 십여가지가 넘는 수술 중에서 수의사의 주관에 따라 어떤방법 몇가지를 동시에 적용하기도 하기에 다른 비용이 청구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치료비용의 다름은 특정수의사가 '과잉청구이다' '틀렸다' 라는 것이 아닌 진료스타일의 다름에 있을 것입니다.

수의사 또한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실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각각 다른 진단과 치료방법이 적용될수 있지만 환자를 치료하기위한 마음은 다름이 없을것입니다.

2. 환자의 사정에 따라 치료방법이나 결과가 다를수도 있습니다.

환자분의 경제적, 개인적 사정에 따라서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목표를 포기하고 환자분의 사정에 맞추어 절충하는 차선의 치료를 하기도 합니다. 최상의 진료방법은 아니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병원에서 모든 검사와 치료를 했는데 하나도 낫지 않고 더 심해졌다고 첫 만남부터 화를 내며 오신 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전차트를 보면 환자분이 원치 않아 검사를 거부하고 약만 먹어본 경우도, 재진날짜도 지켜지지 않아 몇 달에 한번 정도씩 내원하여 그동안 악화되었던 경우도, 그 질병의 직전 진료일이 2-3년 전인 경우도 있습니다.

진료에 들어가더라도 기초적인 피부진단을 위한 1만원 이하의 기초검사조차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도 있기때문에 수의사는 치료가 느리거나 잘 안될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내심 걱정하며 광범위 항생제 등의 일반적인 약을 처방하기도 합니다.

3. 결과의 평등을 바라지 마세요.

동일한 치료일지라도 생체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치료 결과가 상이할 수 있습니다. 간혹 생기는 의료 분쟁의 대부분은 감정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올바른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치료했더라도 의학 기술의 한계나 그 환자분의 상황 또는 다른 이유로 인하여 치료 결과가 나쁜 경우가 있습니다. 고생한 환자분은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물어보면 '어쩔 수 없다'라고 수의사가 답변하여 감정적으로 곪게 되고, 의료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환자 입장에서 자신이 고생했던 부분이 억울하고 한편으로는 수의사가 알아주길 바라겠지만, 이런 호소에 대해서 '그럴 수 있습니다. (이런 고생을 하게 만든 점, 의사로서) 죄송합니다.' 라고 말씀드리기가 우리나라 수의사 입장에서 참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자체가 '진료에 과실이 있었다.'로 받아들이는게 한국의 풍토이기 때문입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환자가 사망했다고, 암 수술 후 환자가 사망했다고 의사가 잘못한건 아니지요. 진료를 받았음에도 다른 환자와 비슷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참 속상합니다.

그렇다고 그걸 수의사, 병원 탓으로 돌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수의사 입장에서도 속상하고 안타깝고 죄송합니다만...

당사자가 과정이 바람직한 방향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가 나쁘더라도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번에 원하는 치료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의사의 잘못이라 속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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