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잔혹사, 성형외과·피부과 종사자 “강남에서 병원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들”

  • 입력 2016년 1월 28일 10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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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악쓰기, 인터넷비방, 무료시술 요구에 시달려
미용치료란 특수상황서 빚어지는 감정노동자의 고충


최근 성형외과를 찾는 것을 ‘의료행위’로 보기보다 미용실이나 에스테틱을 찾아 ‘미용서비스’를 받는 정도로 생각하는 추세다. 이렇다보니 성형외과·피부과·안티에이징 클리닉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느새 의료진이라기보다 ‘감정노동자’로 여겨진다.

의료서비스업에서 의사의 감정노동은 상상 이상이다. 실제로 미용의료 종사자들은 객관성 없이 시술에 불만을 털어놓는 환자들의 소리지르기, 인터넷에 비방하기, 무료 시술 집요하게 요구하기 등에 시달린다. 웬만한 성형외과나 피부과는 으레 겪는 관례 정도로 받아들인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83개 의료기관 보건의료 노동자 1만862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병원노동자 10명 중 5명(49.8%, 8,694명)이 환자 및 보호자 등으로부터 폭언을 경험했다. 폭행을 당했다는 경우도 7.8%(1270명)를 기록했다.

이와 함께 감정노동(emotional labour) 수행 정도도 높았다. 병원 노동자들은 환자 및 보호자를 대할 때 솔직한 감정을 숨기고 일하거나(71.5%), 자신의 기분과 상관없이 웃거나 즐거운 표정을 짓고(67.2%), 환자 및 보호자를 응대할 때 실제 기분이 되도록 노력하고(54.8%) 있었다.

더욱이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은 ‘외모 개선’이 치료의 주가 되는 만큼 환자들은 디테일한 부분 하나하나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서울 강남구 A모 병원에 근무하는 상담실장은 “상담을 받은 환자 중 수술 후 최종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병원을 믿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컴플레인을 거는 경우가 상당수”라며 “환자의 불안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무조건 사과를 받겠다거나, 무료로 다시 수술해달라는 등 자신의 불안함을 의사와 병원 직원에게 푸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병원에서 해결해주지만 수술 후 3일도 지나지 않아 자신의 변한 모습을 책임지라는 환자는 불편하다”며 “‘회복과정을 거치는 것이니 염려 말라’고 말해도 ‘다 안 다고 쉽게 말하지 말라’는 식으로 환자들이 대응해 괴롭다”고 덧붙였다.

뷰티클리닉을 찾는 사람 중에는 ‘고객은 왕’이라는 인식을 넘어 일방적으로 화를 내면서 폭언을 퍼붓는 사례가 적잖다. 일부 성형외과에서는 이들 환자를 전담하는 ‘상냥하지만 기가 센’ 직원을 채용할 정도다.

병원 관계자들은 ‘일부 환자들은 무료로 시술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 일부러 진상을 부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강남의 B치과원장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국내 일간지 매체 기자를 사칭한 남성으로부터 ‘지난해 한 여성 환자를 왜 경찰까지 불러서 쫓아내야 했느냐’는 협박을 당했다. 그러나 수소문해보니 기자가 아닌 것으로 확인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사칭 기자가 말한 여성 환자는 1년 전 병원을 찾아 미용 목적의 라미네이트 시술을 받았다. 라미네이트 제작에 들어가려던 중 본을 뜬 치아 모양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갑자기 화를 내더니, 계속 ‘이거 무료로 해주실 거냐’며 고집을 부렸다. 아직 본격적인 치료 전이라 다시 본을 떠 주겠다고 하자 ‘왜 그럼 처음부터 제대로 하질 못했느냐’며 화를 냈다. 의사와 의견을 조율하기보다는 ‘무료시술’을 목표로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데 주력했다. 결국 이 여성은 병원 대기실에서 소란을 피우며 폭언을 퍼부었고, 치과 측은 다른 환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결국 경찰을 불러야 했다. 이후에도 이 여성은 꾸준히 치과를 비방해오다가 최근엔 지인에게 알려 기자로 사칭하게 만들고 ‘기사화하겠다’고 협박하기에 이르렀다. 전혀 문제될 행동을 하지 않았던 치과 측이 당당하게 맞서자 ‘사칭 기자’는 꼬리를 내렸다. B치과 원장은 “강남에서 병원을 운영하려면 이정도 일은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들은 자신의 평판, 입소문, 신뢰로 병원을 운영하는 만큼 진료실 내 크고 작은 소란에 예민하다. 병원에서 이뤄지는 환자와의 분란은 의사의 의지와 상관 없이 부정적인 소문과 평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렇다보니 환자에게 폭언을 들어도 참아 넘기기 일쑤다. 결국 스스로 삭이는 수밖에 없다.

서울 강남 C모 성형외과 직원들도 한 여성 환자에게 1년간 시달리며 결국 법정에서 문제를 해결하게 됐다. 이 환자는 복부지방흡입수술을 받은 뒤 의사와 직원들을 집요하게 괴롭히며 병원을 비방해왔다. ‘성형에 대해서 좀 안다’고 자부하는 이 환자는 지방흡입수술로 자신의 복부가 망가졌다며 1주일에 한번씩 병원을 찾아 행패를 부렸다. 회복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을 ‘문제점’이라며 걸고 넘어졌다. 더욱이 SNS와 포털사이트에 병원에 관련된 부정적인 내용을 올리고 C병원 원장을 인신공격했다. 병원 상담실장은 새벽마다 이어진 문자메시지와 전화에 시달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 환자가 포털사이트에 올린 고민 글에는 ‘시간이 답이니 속단하지 말라’는 댓글이 제법 달렸지만 게시자는 자신이 듣고 싶은 답만 들었다. 심지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다른 지방흡입 전문병원을 찾아 자신의 상황을 호소했지만 돌아온 답도 역시 ‘당연한 회복과정이니 기다리라’는 데 그쳤다.

그래도 이 환자는 비방과 저주를 멈추지 않았다. 알고보니 다른 병원에서도 이같은 전적이 화려했다. 스스로 포털사이트에 ‘괜찮은 (시술)결과가 나올 때까지 병원에서 난리치면 마음이 편하더라’는 식의 댓글을 달기도 했다. 시술을 받은 병원에 대한 영업방해가 일상화된 상태였다. 그녀의 목표는 대개 ‘무료 재수술’이며 의사들의 말대로 회복이 이뤄지면 슬그머니 발을 뺐다. 그녀의 해결 방식은 ‘아니면 말고’식의 막무가내다. 결국 그녀는 처음으로 법정에 서게 됐다.

C병원 상담실장은 “병원에 종사하는 사람들, 특히 의사는 편견에 노출되기 쉬운 특수 직업군이니 만큼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며 “상황에 맞는 치료법을 찾다보면 이런저런 치료나 검사를 권하게 되는데 본의 아니게 사욕을 챙기는 부도덕한 의사로 여겨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강남에서 영업하는 성형외과일수록 이같은 편견의 대상이 되기 쉽다”며 “사람을 치료하는 특수한 서비스 환경 탓에 감정노동이 심해질 수밖에 없는 듯하다”며 “고 덧붙였다. 미용치료 영역에서도 의사가 성심껏 치료하고, 환자도 의사를 신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길 고대해본다.

글/취재 = 동아 라이프섹션 정희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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