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자령 산행기]선녀가 놀다 갔다는 선자령… 흐드러지게 핀 들꽃

  • 동아경제
  • 입력 2015년 5월 8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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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사람들은 어째서 아직까지 오지 않는 거야?’

5월 2일 오전 9시30분에 대관령휴게소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한 후배 2명이 1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는다. “거의 다 왔다”고 한 게 벌써 20분전인데, 아직까지 차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 등산은 준비과정에서 뭔가 삐걱거리더니 시작부터 조짐이 이상하다.

지난 덕유산 산행의 여파가 생각보다 컸나보다. 함께했던 일행 9명 가운데 1명은 무릎 연골을 수술하고(오래전부터 예정됐던 거였지만), 또 한 명은 발목 인대를 다쳐 아직까지 병원을 오가며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평소 운동과 담쌓고 책상머리에서 키보드와 씨름만 하던 기자들이 눈이 수북한 산길 21km(8시간)를 날듯이 오르내렸으니, 오히려 무릎과 발목이 고장 나지 않은 것이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이번 산행은 단출하게 여섯 명만 참가했다. 지난 10여회의 산행 중 최저 인원이다. 그럼에도 2명이 늦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다행히 이번 산행은 야트막한 선자령이다.

해발 1157m의 선자령은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과 강릉시 선산면의 경계, 백두대간의 주능선에 위치했다. 선자령(仙子嶺)이란 명칭은 계곡이 아름다워 선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와 목욕을 하고 놀다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데서 유래했다.
11시가 거의 다돼 일행이 휴게소에 도착했다. 한마디 하려고 후배의 얼굴을 보니 눈이 퀭한 것이 어딘지 모르게 초췌하다. 이유를 물으니 지난밤 서울 도심의 대규모 시위 때문에 밤샘 근무를 하고 오전 근무자에게 상황을 넘긴 뒤 곧바로 출발한 탓이란다. 하루 쉬어야하는데 등산 약속 때문에 지친 몸을 이끌고 먼 길을 달려온 것이다.(에고, 우리 직업이 그런 걸 어쩌겠나). 후배의 손을 잡아주고 등을 두드려주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제 일행이 모두 모였으니 출발이다. 오늘의 코스는 대관령휴게소를 출발해 양떼목장-풍해조림지-샘터-선자령-전망대-국사성황당을 거쳐 다시 대관령휴게소로 돌아오는 약 11.6km. 예상 등반시간은 점심시간 포함 4시간이다.
선자령은 높은 산이지만 해발 840m의 대관령휴게소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리 높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전체적으로 등산로가 평탄하고 오르기 쉬워 사계절 가벼운 트래킹코스로 즐겨 찾는다. 특히 겨울철 눈꽃 트래킹이 유명한데 눈이 많이 오는데다가 능선이 완만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자령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봄에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봄철 구불구불한 능선을 걷다보면 동해에서 불어오는 포근한 바람이 속삭이듯 귀를 간질이고, 곳곳에 피어난 이름 모를 작은 들꽃들이 등산객을 반기기 때문이다. 너무도 앙증맞고 예쁜 꽃들 때문에 가다 서다를 수차례 반복하다가 샘터에 도착했다. 대관령휴게소부터 샘터까지 2.6km. 꽃을 구경하며 쉬엄쉬엄 걸어 50여분이 걸렸다. 역시 편한 구릉지대라 숨도 차지 않는다. 점심은 선자령 아래에서 먹기로 하고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출발.

기온은 섭씨 20도를 오르내리고 간간히 구름이 보이지만 햇빛을 가릴 정도는 아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등산하기에 정말 좋은 날씨다. 오늘의 복장은 얇은 여름 등산바지에 메시 소재 반팔티셔츠, 그 위에 방풍 재킷을 입었다.

트래킹에 무엇보다 중요한 장비 중 하나는 신발이다. 너무 무거운 중등산화를 신으면 필요이상으로 에너지 소비하게 되고, 그렇다고 운동화를 신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날 선택한 ‘벤트레일리아’는 벤트(Vent) 기능을 강화해 쾌적함을 구현한 전천후 트레일화다. 중창(미드솔)과 안쪽 바닥에 신발 안팎의 공기 순환을 돕는 벤트 홀(Hole)을 적용해 산행 시 발의 뜨거운 열기를 밖으로 배출한다. 신발 갑피도 메시 소재를 적용해 통기성을 높였다. 트래킹이나 가벼운 산행에 적합하다.
날씨가 더워지면 티셔츠도 중요한데, 땀을 잘 배출하고 물에 젖어도 툭툭 털어 입으면 금방 마르는 속건 기능을 갖춘 것이 좋다. 이날 입은 ‘오스텐슨 캐년 크루’는 옴니프리즈 제로를 적용한 기능성 제품이다. 원단에 프린트 된 수많은 블루링은 땀이나 수분을 흡수하면서 동시에 체온을 내려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겨드랑이와 등판 부분을 메시로 만들어 통기성을 강화하고, 겨드랑이 안쪽에 데오도란트 테이프를 적용해 땀 냄새를 줄였다.

변화무쌍한 날씨에 대비한 방풍 재킷도 봄철 산행에 필수다. 재킷은 쉽게 꺼내 입을 수 있도록 배낭 위쪽에 넣는 것이 좋다. 등반도중 휴식이나 식사 때 체온이 내려가지 않도록 입어줘야 한다. ‘서머 솔리튜드 재킷’은 옆구리 부분에 통풍 기능을 하는 3중 절개 슬릿을 갖춰 쾌적하고, 산행 중 바람과 가벼운 비로부터 체온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좋은 점은 제품을 둘둘 말아 재킷 가슴 주머니에 집어넣을 수 있어 언제 어디서나 휴대가 간편하다는 것이다. 이런 재킷은 봄여름 일상에서의 가벼운 운동이나 기온이 내려가는 야간에도 좋다. 옷들은 모두 컬럼비아 제품으로 트래킹에 적합하게 만들어졌다.

웃고 떠들며 잠깐 걸은듯한데 어느덧 눈앞에 선자령이 들어왔다. 나무그늘 아래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펼친 시간은 오후 1시10분. 정상 바로 아래 풍력발전기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드넓은 목초지 끝으로 곤신봉과 매봉이 이어진다. 부드러운 초록색 구릉과 흰색의 커다란 풍력발전기, 푸른 하늘이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냈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선자령 정상에 올랐다. 정상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민망한 200평 남짓의 널찍한 공터에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날씨가 좋으면 이곳에서 동해가 훤히 보인다. 기념사진을 몇 장 찍고 바로 하산 길에 올랐다. 정상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넓은 초원이 나온다. 겨울철이면 등산객들이 눈썰매를 타는 곳이다. 눈이 없어서 아쉽지만, 대신 키 작은 들꽃이 등산객을 반긴다. 쉬엄쉬엄 꽃 사진도 찍고 그늘에서 쉬어가며 유유자적 산을 내려왔다. 중간에 국사성황당에서 굿도 구경하고 천천히 내려왔어도 대관령휴게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15분. 이날 총 산행 시간은 4시간5분이다.
“그것참, 경치는 좋은데 등산이라고 하기에는 무엇인가 심심하네요.” 한 후배가 조금 아쉬운가보다. 하긴 덕유산을 날라 다니는 실력인데 선자령으론 성이 차지 않을 듯도 싶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번 산행은 애초에 가벼운 트래킹으로 계획한 것인데, 다음을 기약해야지.(그래도 작고 예쁜 들꽃의 미소를 보며 모든 걱정을 내려놓지 않았던가.)

이제는 맛집을 찾아가는 시간. 오늘의 목적지는 평창군 대관령면에 있는 납작식당이다. 40년 전통의 오삼불고기 전문점인데, 푸짐한 양과 신선한 재료, 매콤한 맛을 자랑하는 근방에서 유명한 음식점이다. 대관령휴게소에서 차로 15분 남짓 걸려 찾아갔는데, 아뿔싸! 재료가 모두 떨어져서 오늘 장사를 끝냈단다. 아쉽지만 입맛을 다시며 뒤돌아서 근처 한우전문점을 찾았으나, 여기도 문을 닫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시작부터 조짐이 좋지 않더니 마무리도 이상하다. 결국 근처 이름 없는 식당에서 오삼불고기를 서둘러 먹고 상경길에 올랐다. “다음은 곰배령 꽃구경 어때요?” 차에 타는데 일행 중 한명이 긴급제안을 한다. 아니 왜 갑자기 령(嶺) 타령, 꽃 타령을 하는 것일까. 그들의 마음에도 봄바람이 부나보다.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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