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정원, “지상과 고공의 차이만큼 가려진 진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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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0월 26일 11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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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무엇을 위한 투쟁인가.
재개발반대를 위한 주민들, 이들을 돕겠다고 찾아온 시민운동가, 다큐멘터리 감독, 신문기자, 수녀, 전직 장관. 그리고 얼떨결에 이들과 함께 하게 된 크레인기사 부부.

이들은 고공의 타워 크레인에 올라 180일간 투쟁을 벌인다. 연극 ‘고공정원’은 이 180일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극단 산이 기획·제작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명동예술극장이 후원한 이 연극은 그러나 도시 재개발과 반대투쟁에 대한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에 대한 날선 투쟁이요,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투쟁기에 가깝다.

연극 ‘고공정원’을 보고 있으면 ‘생존’이 걸린 인간에게는 ‘투쟁’조차 호사스럽게 느껴진다. 식량과 물, 전기를 제공받고 진압을 늦추기 위해 경찰에게 돈을 정기적으로 쥐어준다. 크레인 위에서 농성자들을 대상으로 밥을 파는 사람도 있다.

한뜻 한 목소리로 모인 사람들은 6개월이란 긴 시간을 시시때때로 강풍이 불어 닥치는 ‘고공정원’에서 생존하며 차츰 지쳐간다. 예의바른 말투는 사라지고 욕설과 반말이 난무한다.
전직 장관은 수녀에게 추근거리고, 밥장사 여인은 “너희들은 쓰레기야” 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수녀는 사람들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내민다. 모두들 미쳐간다. 폐지와 빈병을 수거하기 위해 가끔 크레인 위로 올라오는 노인이 현자처럼 느껴질 정도다.

김상진 작가의 다소 난해하고 묵직한 원작을 윤정환 연출이 소극장 무대에 어울리도록 각색하고 연출했다. 3층 높이의 크레인 무대를 설치하기 위해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공연한다.

‘고공정원’이라기보다는 어쩐지 ‘고공정글’이 더 어울리는 공간이지만, 보다 보면 왜 ‘고공정원’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배우들의 ‘날선 연기’도 볼 만하다. 입만 열면 “국민이 …”하지만 실상은 추악한 정치인의 표본인 전직 장관을 연기한 이종윤과 ‘대머리 여가수’, ‘임대아파트’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던 유지수가 눈에 띈다.

경비대장 임씨 역과 노인 역의 한성식, 유연수가 중견답게 자칫 말의 유희로 빠질 수 있는 극의 중심을 단단하게 붙들어준다.

마지막으로 관람 팁 하나. 대부분 배우들의 연기는 무대에 설치된 크레인의 중간이나 꼭대기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2층 객석이 1층보다 관람하기에 훨씬 좋다. 27일까지 공연하니 서둘러야 한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트위터 @ranbi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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