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마음도 건강한 68세…‘국대 감독’ 안준호의 노마지지(老馬之智)[이헌재의 인생홈런]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18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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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호 남자 농구 국가대표 감독이 이른 아침 피트니스센터에서 하체 운동을 하고 있다. 안준호 감독 제공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60대 후반 나이에 자비를 들여 해외 연수를 가는 사람은 좀처럼 찾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프로농구 삼성 썬더스를 지휘한 7시즌(2004~2011년) 동안 우승 1회, 준우승 2회를 이끈 안준호 감독(68)은 지난해 하반기에 미국 대학 농구 명문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지도자 연수를 했다. 현지 코칭스태프와 함께 경기를 보고, 회의에도 참가하며 열정적으로 보고, 듣고, 배웠다. 그는 이전에도 종종 미국으로 건너가 UCLA에서 개최한 빅맨 캠프나 프리미어 캠프 등에 참가했다. 미국프로농구(NBA) 경기도 틈틈이 관전하면서 변화하는 농구의 흐름을 따라잡으려 애썼다.

안준호 감독은 2016년엔 뉴욕 세인트존스 대학 객원 코치로 활동했다. 그 때의 인연이 이어져 지난해엔 UCLA에서 지도자 연수를 했다. 안준호 감독 제공
안준호 감독은 2016년엔 뉴욕 세인트존스 대학 객원 코치로 활동했다. 그 때의 인연이 이어져 지난해엔 UCLA에서 지도자 연수를 했다. 안준호 감독 제공

그 같은 노력 덕분에 안 감독은 최근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다. 대한민국농구협회는 감독-코치를 한 조로 뽑는 방식으로 대표팀 지도자를 공모했는데 서동철 전 수원 KT 감독과 조를 이룬 안 감독이 면접 심사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안 감독이 나이가 적지 않은 데다 현장을 떠난 지도 13년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안 감독은 2011년 삼성 감독에서 물러난 뒤 한국프로농구(KBL)의 경기이사와 전무이사를 맡으며 행정가로 일했다. 이후엔 모교인 경희대에서 객원교수 등을 지냈다. 안 감독은 “많은 분들의 우려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판사는 판결로 얘기하듯 감독은 현장에서 성적으로 말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안 감독은 자신의 새 도전을 ‘라스트 서바이벌’이라고 표현했다. NBA 시카고 불스에서 뛰었던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미국)이 현역 은퇴 연도에 사용했던 ‘라스트 댄스’를 패러디한 것이다.
안 감독은 “후배들 자리를 뺏는 것 아니냐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경험과 연륜을 접목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요즘은 인생 100세 시대 아닌가. 누구나 나이에 관계없이 꿈을 꿀 수 있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대학 농구의 전설 존 우든 전 UCLA 감독(1910~2010년) 동상 앞에서 포즈를 취한 안준호 감독. 안준호 제공
미국 대학 농구의 전설 존 우든 전 UCLA 감독(1910~2010년) 동상 앞에서 포즈를 취한 안준호 감독. 안준호 제공

그가 농구 공부만큼 많이 신경 쓰는 건 건강 관리다. 나이가 무색할 만큼 건강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덕에 지금도 어지간한 젊은 사람 못지 않게 건강하고 탄탄한 몸을 갖고 있다. 체력이 뒷받침되었기에 적지 않은 나이에도 국가대표 감독이라는 중책을 맡을 수 있었다.

그의 하루는 오전 5시 반이면 시작된다. 남들보다 늦은 고교 1학년 때 농구 선수 생활을 시작한 그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하루를 빨리 시작하는 버릇을 들였다. 오전 6시면 수십 년째 다니는 피트니스센터로 출근해 그곳에서 오전 시간을 보낸다. 그는 “아침형 인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은 새벽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예전 프로 감독직을 맡을 때나 지금이나 새벽에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다”고 했다.

그에겐 수십 년간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운동 루틴이 있다. 먼저 스트레칭과 열탕을 통해 땀을 한 번 뺀다. 이후 냉탕에 들어가 몸을 식힌 뒤 실내 자전거를 한 시간 가량 탄다. 강도 높은 자전거 페달 밟기를 통해 다시 한 번 땀을 낸 후 이번에는 트레드밀에서 가벼운 조깅이나 빨리 걷기를 한다.

이후는 근력 운동 시간이다. 벤치프레스로 상체 근력 운동을 하고, 레그 컬과 레그 익스텐션 등을 통해 하체를 단련한다. 스쾃도 빼놓지 않는다. 그는 “내 삶의 기본적인 요소는 운동이다. 건강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운동으로 시작해야 하루가 즐겁고 쾌활하게 돌아간다. 내게 운동은 만족이나 행복 그 자체”라고 말했다.

안준호 감독은 매일 오전 운동으로 땀을 한 바가지씩 흘린다. 안준호 감독 제공
안준호 감독은 매일 오전 운동으로 땀을 한 바가지씩 흘린다. 안준호 감독 제공

운동을 마치고 오전 11시 쯤 그날의 첫 끼니를 ‘아점’으로 먹는다. 저녁 시간도 빨라 오후 5시경 저녁 식사를 한다. 그는 “자연스럽게 간헐적 단식을 하게 된다. 저녁 약속 등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하루 두 끼 식사를 한다”고 말했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그는 지인들과의 저녁 약속 때는 반주도 종종 곁들인다. 수십 년간 운동으로 단련된 몸에 매일 아침 땀을 빼는 게 일상화되어 있는 덕분인지 여전히 센 주량을 자랑한다.

농구 코트에서는 승부욕을 불태우지만 코트만 벗어나면 그는 유쾌한 남자가 된다. 항상 긍정적으로 말하고, 웃는 낯으로 사람들을 대한다. 그는 “항상 즐겁고 유쾌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70세 가까이 살아보니 우리가 살면서 하는 90% 이상의 걱정은 아무리 해도 해결이 안 되는 것들이다. 해결할 수 없는 일들로 끙끙 앓느니 차라리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게 낫다”고 했다.

프로야구 삼성 감독 시절의 안준호 감독. 7시즌 동안 삼성을 이끌며 7번 모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동아일보 DB
프로야구 삼성 감독 시절의 안준호 감독. 7시즌 동안 삼성을 이끌며 7번 모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동아일보 DB

취미로 가끔 나가는 골프장에서도 그는 ‘명랑 골프’를 추구한다. 그에게 골프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웃고 즐기며 재미있게 치는 것이다. 그는 “골프장에서는 모든 게 ‘오케이’다. 멀리건도 오케이, 가까운 거리 퍼트도 오케이다. 동반자가 원하는 모든 걸 해준다”며 웃었다.

그가 가진 철칙 중 하나는 절대 내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함께 라운드를 하면 좋으나 싫으나 4시간 넘게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액수가 적더라도 돈 잃고 기분 좋은 사람은 없다. 좋았던 관계가 사소한 감정싸움으로 인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내기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골프 스윙도 허허실실이다. 그는 온 힘을 싣는 스윙을 하지 않는다. 행여나 무릎에 무리가 갈 수 있어서다. 대신 박인비처럼 가볍게 쓸어치는 스윙을 한다. 상체 위주의 가벼운 스윙을 하기 때문에 ‘팔로만’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정신 건강은 신문과 독서를 통해 챙긴다. 그는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간지 사설과 칼럼 등을 꼼꼼히 읽는다. 도움이 될 만한 정보나 문구를 잘 정리했다가 강연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때 활용한다. 한창 운동을 하던 대학생 시절에도 그는 책을 가까이했다. 휴일이 되면 서울 청계천에 있던 고서점가를 다니는 게 주요 일과였다.

안준호 감독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60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항상 활력이 넘친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안준호 감독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60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항상 활력이 넘친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이런 습관은 어릴 때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안 감독은 초등학교 입학 전 고향인 전남 담양군에 있는 서당에 다녔다. 천자문, 명심보감을 익히면서 한자와 익숙해졌다. 서울 유학 후 광신상고에 입학해서도 혹시 모를 취업에 대비해 한자 공부만큼은 열심히 했다.

덕분에 프로 감독을 하는 내내 그는 여러 가지 명언을 만들어 내곤 했다. 특히 사자성어를 통해 팀 분위기나 경기에 임하는 자세 등을 촌철살인(寸鐵殺人)으로 표현하곤 했다.

이제 한국 농구의 부활을 책임져야 할 감독으로 돌아온 그는 현재 상황을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사자성어로 정리했다. 그는 “늙은 말의 지혜가 세상에는 필요하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경험과 지혜를 한국 농구 부활에 쏟아붓겠다”며 “감독이라는 자리를 개인적인 영달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감독으로 받는 연봉을 기부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 대한민국 농구 발전을 위해 하나의 불쏘시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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