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뇌졸중 방심 말라…물 넉넉히 마시길”[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28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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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화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여름엔 뇌출혈보다 뇌경색 많아
뇌로 가는 혈액이 덜 공급되거나
수분 적어 혈전 더 생기는 게 원인

한쪽 마비-말 막힘 등 전조 증세
곧바로 응급실 가야 후유증 최소화

탈수 막으려면 2L 내외 물 먹어야
실내외 온도 차, 5도 이내가 적절

정근화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폭염과 무더위로 인해 여름에도 뇌졸중이 많이 발생한다며 뇌혈관에 원활하게 혈액이 흐르게 하려면 무엇보다 탈수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와 함께 실내외 온도차를 5도 이내로 줄일 것을 권했다. 서울대병원 제공
정근화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폭염과 무더위로 인해 여름에도 뇌졸중이 많이 발생한다며 뇌혈관에 원활하게 혈액이 흐르게 하려면 무엇보다 탈수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와 함께 실내외 온도차를 5도 이내로 줄일 것을 권했다. 서울대병원 제공

30대 여성 이민희(가명) 씨는 최근 오른쪽 팔에서 갑자기 힘이 빠지는 경험을 여러 차례 했다. 처음에는 업무상 팔을 많이 쓰다 보니 그런 거라고 여겼다. 좀 쉬고 나면 몇 분 이내에 증세도 사라졌다.

얼마 후 같은 증세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30분 정도 증세가 계속됐다. 좀 쉬었더니 다시 괜찮아졌다. 그 후로 이런 일이 더 자주 발생했다. 게다가 증세 지속 시간은 2~3시간으로 길어졌다. 다른 변화도 생겼다. 말이 어눌해졌다. 똑바로 걷는데 자꾸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느낌도 들었다.

이 씨는 그제야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뇌혈관을 촬영한 결과 왼쪽 대뇌반구로 이어진 큰 혈관의 70~80%가 막혀 있었다. 이와 별도로 뇌혈관 여러 곳이 이미 조금씩 막혀 있었다. 이른바 ‘다발성 뇌경색’이다.

뇌졸중(뇌중풍)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눈다. 뇌혈관이 터지면 뇌출혈, 막히면 뇌경색으로 진단한다. 보통은 겨울에 뇌졸중 환자가 더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이 씨를 치료한 정근화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계절적 요인으로 여름에 더 많이 발생하는 뇌졸중도 있다. 이 씨가 전형적인 ‘여름 뇌졸중’ 사례”라고 했다. 여름 뇌졸중은 겨울 뇌졸중과 어떻게 다를까.

●겨울엔 뇌출혈, 여름엔 뇌경색 많아
추워지면 우리 몸은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대비한다. 내부 에너지와 열을 최대한 보존하는 형태로 전환한다. 이때 혈관은 수축한다. 혈관 내부의 압력은 커진다. 만약 고혈압이 심하거나 뇌혈관이 약해져 있다면 터질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겨울에는 뇌출혈 발생률이 높아진다.

여름은 반대 방향으로 생체 시스템이 작동한다. 체온을 낮추기 위해 열을 발산한다. 혈관은 확장된다. 이 과정에서 팔다리 등 말초 부위로만 혈액이 더 많이 흘러갈 수 있다. 그 경우 뇌에 혈액이 덜 공급되면서 뇌경색이 발생한다. 혈액이 부족해 생기는 ‘저혈류 뇌경색’이다.

여름에 땀을 많이 흘리면 혈액 성분인 혈장의 양이 줄어든다. 하지만 혈장에 녹아있던 단백질, 전해질 등은 그대로 남는다. 그 결과 혈액의 점도가 높아진다. 혈액이 끈적끈적해지는 것이다. 이런 혈액이 응고돼 혈관에 달라붙으면 피떡(혈전)이 된다. 이 혈전이 뇌혈관을 막으면서 뇌경색이 생기기도 한다. ‘혈전성 뇌경색’이다.

폭염은 이처럼 여름 뇌졸중을 유발하는 큰 요인 중 하나다. 폭염이 계속되면 기온이 1도 오를 때 뇌졸중 사망자의 비율이 2.3%에서 5.4%로 늘어난다는 해외 연구결과도 있다.

●“탈수가 여름 뇌졸중 부추겨”
폭염에 방치될 때 우리 몸은 탈수 상태가 된다. 이런 상황이 여름 뇌졸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 교수는 “이 씨의 뇌경색을 유발한 가장 큰 원인 또한 탈수였다”고 말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이 씨는 친구들과 자주 만나 놀았고 여름 휴가도 함께 다녀왔다. 그때마다 술을 마셨다. 이 잦은 음주가 발단이었다. 그때마다 탈수가 생겼다. 하지만 이 씨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 결과 혈관염이 발생했고, 이후 여러 부위에서 뇌경색이 진행됐다. 물론 증세가 얼마 후 사라졌기에 이 씨는 자신이 뇌경색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열심히 건강을 관리했는데도 탈수가 일어나기도 한다. 정 교수는 특히 뇌졸중 고위험군인 고혈압 환자의 주의를 당부했다.

70대 후반의 김기동(가명) 씨는 혈압을 낮추기 위해 평소 열심히 운동하며 세 종류의 고혈압약을 복용했다. 하지만 이 약이 오히려 뇌졸중을 유발하는 간접 원인이 돼 버렸다. 이번에도 탈수가 문제였다.

김 씨가 복용하는 고혈압약에는 이뇨제와 혈관 확장제가 포함돼 있었다. 여름에는 땀이 더 많이 배출되고 혈관이 확장되는데, 똑같은 기능의 약을 추가로 먹은 셈이다. 이런 경우 탈수가 더 빨리 진행될 수 있다. 실제 김 씨가 그랬다. 김 씨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운동하다 갑자기 말이 나오지 않자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정 교수는 “실내외 온도 차도 여름 뇌졸중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더운 곳에 있으면 혈관은 확장한다. 그러다 서늘한 곳으로 들어가면 혈관은 급속하게 수축한다. 확장과 수축이 반복되면 혈관이 뻣뻣해질 수 있다. 그는 “만약 혈관이 약한 상태라면 뇌경색뿐만 아니라 뇌출혈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실내외 온도 차가 10도 이상이 되면 ‘위험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온도 차는 5도 이내로 조절하는 게 좋다.

●“여름 뇌졸중 전조 증세 파악해야”
이상 증세가 나타나면 즉시 응급실을 찾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이 경우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시술을 진행함으로써 후유증이나 합병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

어느 계절이나 뇌졸중 전조 증세는 대체로 비슷하게 나타난다. 다만 뇌경색의 비중이 큰 여름 뇌졸중의 경우 크게 네 가지 증세가 가장 많이 발견된다.

첫째, 한쪽 마비 현상이 심해진다. 오른쪽 뇌혈관에 문제가 생겼다면 왼쪽 팔다리에서 힘이 갑자기 쑥 빠진다. 얼굴 또한 한쪽에서 마비 증세가 나타난다. 웃으려고 해도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을 때도 있다. 양쪽 팔다리나 얼굴에서 동시에 마비 증세가 나타나면 뇌졸중이 아닌 다른 질환일 가능성이 크다.

둘째, 언어 문제가 발생한다. 갑자기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하거나 딴소리를 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발음이 제대로 안 되거나 어눌해진다. 때론 말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진다.

셋째,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때도 한쪽 시야만 검게 보이거나 물체가 두 개로 갈라져 보인다. 양쪽 시야가 컴컴해질 경우 뇌졸중이 아닐 확률이 높다.

넷째, 균형감이 무너진다. 몸이 한쪽으로 쏠리거나 심한 어지럼증을 느낀다. 때로는 걷다가도 넘어진다. 이때도 앞쪽이 아닌 옆쪽으로 넘어질 때가 많다.

정 교수는 이 중에서 한 가지 증세만 나타나도 즉시 응급실에 가야 한다고 했다. 증세가 사라졌다고 해도 뇌졸중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 정 교수는 “여름 뇌졸중은 일시적으로 증세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이 반복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했다. 이를 일과성 허혈 발작, 혹은 미니 뇌졸중이라고 부른다. 여름에는 탈수가 생겨도 수분을 공급하면 금방 좋아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증세를 무시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 경우 30% 정도는 영구적인 뇌졸중으로 악화할 확률이 있다.

●“고위험군 여부 미리 파악해야”
권 교수는 여름 뇌졸중에 취약한 고위험군이 있다고 했다. 자신이 여기에 속하는지 반드시 알아둘 것을 권했다.

첫째, 동맥경화성 혈관 협착 등 이미 혈관 질환이 있다고 진단받은 환자들이다. 이런 환자들은 특히 여름철 저혈류 뇌경색에 취약하다.

둘째, 고혈압 환자를 비롯해 만성질환자들이다. 특히 고혈압이 있으면 여름뿐 아니라 겨울에도 뇌출혈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셋째, 노인도 고위험군에 들어간다. 노인들은 생체 리듬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다소 떨어진다. 이 때문에 신체 반응이 느려진다. 탈수가 진행되고 있는데도 목마름을 느끼지 못할 때도 있다. 노인들은 목이 마르지 않더라도 수시로 물을 마셔주는 게 좋다.

넷째, 자신의 혈관 상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30대 여성 이 씨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씨는 뇌혈관에 염증이 잘 생기기 쉬운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평소 검진 등을 통해 이런 사실을 알아두는 게 좋다.

고위험군은 물론이고 질병이 없는 사람들도 여름 뇌졸중을 예방하려면 탈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 교수는 물을 충분히 먹을 것을 권했다. 이온 음료도 무방하다. 단, 커피와 알코올은 이뇨 작용을 하므로 탈수를 악화시킬 수 있다. 탄산음료에는 당 성분이 많아 수분 흡수를 막는다. 물은 본인 체중(㎏)의 3%를 하루에 먹는 게 좋다. 가령 체중이 70㎏이라면 2.1L 정도는 먹어야 탈수를 막는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혈압과 혈당은 자주 측정해 변동 상황을 파악해둬야 한다. 또 고열량 보양식이나 햄, 치즈, 육가공식품은 되도록 피하는 게 좋다.

<여름 뇌졸중 예방을 위한 생활 수칙>
1. 혈압-MRI 검사 등으로 자신의 뇌혈관 상태를 점검하라.
2. 본인이 뇌졸중 고위험군인지를 파악하라.
3. 탈수 증세가 생기면 곧바로 넉넉히 물을 마셔라.
(노인은 탈수 증세가 없어도 미리 물을 많이 마신다)
4. 평소 복용하고 있던 약을 계속 먹어도 되는지 점검하라.
5. 기름기 있고 짠 음식은 피하라.
6. 식이요법과 함께 적절한 운동을 병행하라.
7. 뇌졸중 전조 증세에 대해 파악해 두라.

※ 자료 : 정근화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여름#뇌졸중#뇌경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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