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대통령’ 성기홍 “치매는 치료보다 예방이 중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8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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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홍 대한직장인체육회걷기협회 기억력회복운동센터장이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걷기가 치매 예방에 중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성기홍 대한직장인체육회걷기협회 기억력회복운동센터장이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걷기가 치매 예방에 중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치매는 치료보다는 예방이 중요합니다. 치매 예방에는 걷기가 최고입니다.”

성기홍 대한직장인체육회걷기협회 기억력회복운동센터장(59)은 문재인 정부의 치매국가책임제의 방향이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한 가정을 망가뜨리는 치매에 국가가 책임지고 나섰다는 점에선 아주 긍정적이다. 하지만 정책의 방향이 잘못됐다. 치매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치매에 걸리지 않게 예방하는 게 더 급선무다.”

성 센터장은 선진국에서는 일찌감치 걷기 등 운동을 치매 예방에 활용하고 있는데 국내에선 치료에만 급급해하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최소한 선진국을 조금만 벤치마킹해도 전국 치매안심센터 256곳에 운동프로그램이 있어야 하는데 단 한 곳도 운동프로그램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은 1900년대 초부터 치매를 병명으로 확정하고 예방과 치료에 의술은 물론 운동까지 활용하고 있다. 운동이 치매 예방은 물론 치료에도 효과적이라는 과학적인 결과는 숱하게 쌓여 있다. 우리나라는 치매국가책임제라며 조호비와 투약비 등에 돈만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17조 원이나 배정됐다는데 이마저도 제대로 지원이 안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치료에만 매달리면 돈만 더 들어갈 뿐이다.”

걷기는 건강을 챙기는 좋은 운동법이고 특히 치매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성기홍 센터장 제공.
걷기는 건강을 챙기는 좋은 운동법이고 특히 치매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성기홍 센터장 제공.
성 센터장은 ‘걷기 대통령’으로 불린다. 1980년대 말부터 걷기에 관심을 가지고 30년 넘게 연구하고 발표하고 교육하면서 생긴 닉네임이다.

“1987년 세종대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주간스포츠신문 인턴 기자로 한글 학자 고 한갑수 선생을 취재할 때 걷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한 선생님이 한국보행연맹을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바르게 걷기 교육을 보급하고 있을 때였다. 걷기를 홍보할 사람이 없어 추후 연맹 일을 도와주면서 자연스럽게 걷기를 접했다.”

당시만 해도 걷기는 운동이 아니었다. 조깅, 달리기, 마라톤이 활성화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걷기를 연구한다면 ‘만날 걷는 데 뭔 걷기 타령이냐’고 비아냥거릴 때였다. 성 센터장은 해외 논문을 뒤져 걷기가 운동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찾아냈다.

“산업혁명이 끝난 뒤 영국에서 철도노무자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논문이었다. 기관사, 매표원, 철로 및 기관차 보수자 등 3개 그룹으로 나눠 심장병 및 사망률에 대한 비교 분석이었다. 심장병과 사망률이 높은 순서가 기관사, 매표원, 보수자 순이었다. 보수자는 보수하러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육체노동을 했기 때문에 더 건강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적극적인 육체 활동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첫 논문으로 기억한다.”

9월 서울 마포구 상암동 평화의공원에서 열린 2019 브레인워킹페스티벌에 참석한 성기홍 대한직장인체육회걷기협회 기억력회복운동센터장(오른쪽에서 세번째). 성기홍 센터장 제공.
9월 서울 마포구 상암동 평화의공원에서 열린 2019 브레인워킹페스티벌에 참석한 성기홍 대한직장인체육회걷기협회 기억력회복운동센터장(오른쪽에서 세번째). 성기홍 센터장 제공.
1987년 9월 한갑수 선생과 함께 일본 도쿄 인근 히가시마쓰야마시서 열린 걷기대회에 참가했다.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서였다. 놀라웠다.

“3일간 열리는 대회에 매일 5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3000엔의 참가비가 있었는데도 대성황을 이뤘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20, 30, 40, 50km 등 체력에 맞게 참가해 걷기를 즐겼다.”

성 센터장은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를 치렀고 1988년 서울올림픽도 잘 개최한다면 한국에도 운동 열풍이 불 것으로 전망했고 걷기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사회에선 아직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계속 걷기에 매달렸고 2001년 (사)한국워킹협회를 만들어 사무총장으로 걷기를 보급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걷기대회도 열었다.

“2003년엔 KBS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걷기도 운동이다’는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조언을 했다. 큰 호응을 얻었다. 외국의 사례를 많이 참고했고 ‘걷기 혁명 530’ 시리즈는 국내 걷기에 붐을 일으켰다.”

530걷기는 주 5일 1회에 30분 이상 걷기를 통해 건강한 삶을 유지하자는 뜻이다. 이후 마사이족 걷기, 파워워킹 등 걷기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제주 올레길 등 전국적으로 걷기 길이 많이 생겼다. 전국적으로 1만 개 정도 된다. 어찌 됐든 걷기가 운동이 된다는 인식이 국민들에게 스며들었다. 걷기가 비만, 당뇨, 통풍, 뇌졸중 등을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다는 과학적인 결과물들도 쏟아지며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것은 정착 단계에 와 있다. 하지만 치매에 있어서는 아직 불모지나 다름없다.”

성 센터장은 3년여 전부터 걷기와 치매와의 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우리 신체의 여섯 번째 생체신호인 걸음걸이는 치매 예측과 예방의 중요한 척도다. 연구 결과 일반적으로 정상인의 걸음 속도 범위는 초당 1.2¤1.4m다. 치매나 경도인지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걸음 속도는 이보다 떨어진다. 경도인지장애가 있으면 초당 0.6¤0.8m. 걸음 속도가 초당 0.4m 이하로 떨어지면 낙상 확률이 높아졌다. 육체적인 결함 없이 초당 0.4m 미만으로 걷는다면 치매를 의심해야 한다.”

걷기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움직임이다. 과거에는 걷기를 인지기능에 관여하지 않는 자동적 운동으로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뇌의 해마·전두엽과 연결된 복잡한 인지기능이 동반된 운동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정상적으로 걷는다는 것은 뇌에서 가장 빠른 길에 대한 전략적인 계획이 필요하며 이후 심리상태와 환경 사이에서 다양한 판단을 해야 한다. 어떻게 가야 안전하고 효율적인지 걸으면서 계속 계산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판단이 내려진다. 파란불이 깜빡이는 것을 보고 ‘지금 가야 하나’ ‘아냐 지금 가면 위험해’, ‘갑자기 나타난 오토바이를 어떻게 피해야 할지’ 등 수많은 인지 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성기홍 대한직장인체육회걷기협회 기억력회복운동센터장도 항상 걷기로 건강을 다지고 있다. 성기홍 센터장 제공.
성기홍 대한직장인체육회걷기협회 기억력회복운동센터장도 항상 걷기로 건강을 다지고 있다. 성기홍 센터장 제공.
성 센터장은 걷기가 치매 예방에 필수라고 강조한다.

“치매는 잠복기가 10년에서 15년이 된다. 65세에 치매라는 진단을 받았다면 50세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미 걸린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50~58세에 치매로 발전할 수 있는지를 미리 알 수 있다. 듀크대 등 세계 유명 대학교는 걸음걸이로 치매를 예측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성 센터장은 치매를 예측하는 방법은 수백 가지지만 걸음걸이의 변화를 체크 하면 초기에 알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동안은 얼마나 걸었냐가 운동의 기준이었다. 이젠 속도가 중요하다. 나이가 들면 걷는 속도가 떨어진다. 노화에 따른 것도 있지만 뇌의 인지기능이 떨어지면 걸음걸이 속도가 늦어진다. 특별한 징후가 없는데 걸음걸이 속도가 떨어지면 치매를 의심하고 인지능력 검사를 실시하고 치매로 확증되면 약물과 운동을 통해서 치매 발병을 늦출 수 있다.”

성 센터장은 “약물치료와 운동을 병행하면 10~20년 치매 발병을 늦출 수 있다. 65세에 치매에 걸리면 보통 15~20년 뒤 사망한다. 치매 환자를 미리 진단해 발병을 10~20년 늦춰주면 75~80세까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치매 걸린 사람도 운동을 하면 인지기능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치료에 급급한 국가의 치매 정책을 수정해야 하는 이유다”고 덧붙였다.

“전국치매안심센터에 운동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치매 환자 치료도 중요하지만 치매 가능성이 있는 노인들에게 운동프로그램을 적용해 미리 예방하는 게 향후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더 효율적이라고 확신한다. 복지비용도 훨씬 적게 들어가고 그 비용을 다른 곳에 활용할 수 있다.”

성 센터장은 어릴 때부터 바르게 걷기를 교육시켜야 한다고도 했다.

“인간의 걷기는 8살 이전에 완성된다. 바르게 걷는 자세를 일찍 교육시켜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엄마의 걸음걸이를 따라 하는 경향이 높다. 엄마와 아이들의 걷기 교육을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성 센터장도 걷기로 건강을 챙긴다.

“가급적 많이 걷는다. 하루 종일 몸을 불편하게 한다. 고정식 자전거도 타고 아령 등으로 근육운동도 한다. 매번 체조도 30분 한다. 내 체중을 30년 전하고 똑같이 유지하는 비결이다.” 성 센터장은 ‘걷지 않으면 건강은 없다’는 번역서를 시작으로 올해 출간한 ‘걸음걸이만 바꿔도 30년 젊게 산다’까지 걷기 관련 책만 15권을 출간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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